2024년 11월 29일(금)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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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여! 거긴 별일 없는가? 여긴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눈이 휘몰아치고 있다네. 남해에서만 살다가 잠시 거처하는 이곳에서 겨울의 시작을 함박눈으로 맞이하는 행운이 내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늦은 오후네. 마치 우리 살아왔던 지난날들의 추억들을 한꺼번에 우수수 쏟아 내리며 묵은 기억들을 불러내고 있는 것 같네.
벌써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네. 인생이란 치열하게 살기만 하면 햇살 좋은 어느 봄날 새하얀 식탁보가 놓인 근사한 식당에 '예약석'이라고 씌어 있는 나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어왔었네. 모든 걸 내려놓아도 좋을 만큼 세월이 흐른 지금에사 그것이 장밋빛 환상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자네를 그리워하네.
수도 없이 되뇌던, 절박함 속에서도 홀로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옛사람들의 충고를 잊은 것도 아닌데 세월은 쏜 살처럼 지독히도 빨리 흐르고 허겁지겁 사는 것에 매달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삶인가를 기어코 찾아내지 못하고 덧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다는 회한이 눈발처럼 이리저리로 흩날리며 마음을 어지럽히네.
우리의 초등학교 때는 그랬었네. 방과 후 놀잇거리라곤 학교 운동장에 주전자로 물을 뿌려 '동서남북' '고구려·신라·백제' '깨목ㅤ쫒기' '삼팔선' 같은 이름의 놀이를 그려선 패거리를 갈라 힘자랑하며 흙밭을 뒹구는 게 전부였네. 그러다가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고 굴뚝으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이면 하루를 마감했었지.
허기진 배가 신호를 보내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가자 우리 엄마한테 가서 밥묵자."고 제안한 녀석을 따라 패거리를 이끌고 입만 가지고 찾아가면 김이 무럭무럭 거리는 된장국이며 생선 찌개와 나물 무침으로 한 상 그득한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던 어머님들의 후덕한 인정으로 우리는 귀한 손님이 되었었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어떻게 그런 풍성함과 끈끈한 우정을 이어주는 왕국을 만들어 줄 수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롭기만 하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어머니는 별나라에서 왔던 외계인이었던 모양이네. 집집마다 네댓 명씩 형제간이 즐비하고, 세탁기도 밥솥도 없는 극한에서도 그들은 무슨 재주로 그렇게 요술을 부릴 수 있었는지 지금 세대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네.
그 시절(1960년대) 100달러 수준의 국민소득이 지금은 30,000달러가 넘으니 사람이 산다는 건 소득이나 국가의 복지만으로 행복을 논하는 것이 아니란 걸 새삼 절감하네. 나는 지금도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네. 내 어머니나 자네 어머니나 우리를 한솥밥으로 키워왔던 탓에 이 말이 자연스럽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네.
중학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우리는 각자의 길을 찾아 객지로 떠났고, 세상도 급격히 변해왔네. 대전의 KAIST에는 메타버스대학원이라는 곳이 있네. 그야말로 인간의 생활이 미래에는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가 하는 그 변화의 급속도를 가늠하게 해주는 변화의 지표를 보여주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과일세.
인공지능과 접합된 미래의 도시 패턴은 실제로 먼 곳을 가지 않고도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기술이 적용된 장비를 통해 어떤 형태의 소통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세상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면 되네. 인구의 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위기가 코앞에 닥친 오늘을 생각하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매우 좋은 수단이 될 것이란 기대가 많네.
예를 들자면 '모나리자' 그림을 보러 프랑스에 있는 '루브르박물관'을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남해에서도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 모나리자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토론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일세. 의료나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메타버스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굳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란 생각을 자네는 동의하는가?
그런데 말일세.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 편리함을 추구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중심이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SF영화에 나오는 기계화된 미래 인류의 모습처럼 개인주의적이고 인정이 메마른 상태로 이 공동체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겠나. 어른이 있어서 규범이 지켜지고, 우정과 사랑으로 인해 협력하지 않았던가!
자네나 나나, 숱한 배신과 오해, 능력의 부족함에 좌절하면서도 한가지 붙들고 지키고자 했던 것은 여기 사람이 있고, 그들의 미래가 좀 더 나아지기를 희망했던 것 아닌가? 가진 것 하나 없이 혼돈의 시대 앞에 서 있다 한들 아까워할 나이가 지났네. 그래서 나는 여태껏 그래왔듯이 사람이 있는 곳으로 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싶네.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오래 살겠나? 같이 남은 날들을 추슬러보세. 우린 비록 잊혀 가는 삶이지만 우리 부모가 그리 했듯이, 나름은 남아있는 이들의 반짝이는 삶들에 스며 있는 우리 인생의 흔적을 보면서 위로하고 감사하기로 하자. 즐거웠던 우리의 웃음, 찬란했던 우리의 이야기, 고뇌하던 우리의 아픔들 그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지 않은가?
그러니 아직은 동행하자. 낮게 좀 더 낮은 곳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맞추며 손을 내밀자. 서로의 교감을 통하여 동행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임을 증명하자. 그것이 단지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때로는 서로를 버티게 하는 힘이란 것을 믿자. 그래서 훗날 우리가 추억될 때 헌신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를 이야기하도록 하세.
벌써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네. 인생이란 치열하게 살기만 하면 햇살 좋은 어느 봄날 새하얀 식탁보가 놓인 근사한 식당에 '예약석'이라고 씌어 있는 나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어왔었네. 모든 걸 내려놓아도 좋을 만큼 세월이 흐른 지금에사 그것이 장밋빛 환상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자네를 그리워하네.
수도 없이 되뇌던, 절박함 속에서도 홀로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옛사람들의 충고를 잊은 것도 아닌데 세월은 쏜 살처럼 지독히도 빨리 흐르고 허겁지겁 사는 것에 매달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삶인가를 기어코 찾아내지 못하고 덧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다는 회한이 눈발처럼 이리저리로 흩날리며 마음을 어지럽히네.
우리의 초등학교 때는 그랬었네. 방과 후 놀잇거리라곤 학교 운동장에 주전자로 물을 뿌려 '동서남북' '고구려·신라·백제' '깨목ㅤ쫒기' '삼팔선' 같은 이름의 놀이를 그려선 패거리를 갈라 힘자랑하며 흙밭을 뒹구는 게 전부였네. 그러다가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고 굴뚝으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이면 하루를 마감했었지.
허기진 배가 신호를 보내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가자 우리 엄마한테 가서 밥묵자."고 제안한 녀석을 따라 패거리를 이끌고 입만 가지고 찾아가면 김이 무럭무럭 거리는 된장국이며 생선 찌개와 나물 무침으로 한 상 그득한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던 어머님들의 후덕한 인정으로 우리는 귀한 손님이 되었었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어떻게 그런 풍성함과 끈끈한 우정을 이어주는 왕국을 만들어 줄 수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롭기만 하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어머니는 별나라에서 왔던 외계인이었던 모양이네. 집집마다 네댓 명씩 형제간이 즐비하고, 세탁기도 밥솥도 없는 극한에서도 그들은 무슨 재주로 그렇게 요술을 부릴 수 있었는지 지금 세대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네.
그 시절(1960년대) 100달러 수준의 국민소득이 지금은 30,000달러가 넘으니 사람이 산다는 건 소득이나 국가의 복지만으로 행복을 논하는 것이 아니란 걸 새삼 절감하네. 나는 지금도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네. 내 어머니나 자네 어머니나 우리를 한솥밥으로 키워왔던 탓에 이 말이 자연스럽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네.
중학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우리는 각자의 길을 찾아 객지로 떠났고, 세상도 급격히 변해왔네. 대전의 KAIST에는 메타버스대학원이라는 곳이 있네. 그야말로 인간의 생활이 미래에는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가 하는 그 변화의 급속도를 가늠하게 해주는 변화의 지표를 보여주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과일세.
인공지능과 접합된 미래의 도시 패턴은 실제로 먼 곳을 가지 않고도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기술이 적용된 장비를 통해 어떤 형태의 소통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세상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면 되네. 인구의 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위기가 코앞에 닥친 오늘을 생각하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매우 좋은 수단이 될 것이란 기대가 많네.
예를 들자면 '모나리자' 그림을 보러 프랑스에 있는 '루브르박물관'을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남해에서도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 모나리자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토론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일세. 의료나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메타버스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굳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란 생각을 자네는 동의하는가?
그런데 말일세.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 편리함을 추구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중심이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SF영화에 나오는 기계화된 미래 인류의 모습처럼 개인주의적이고 인정이 메마른 상태로 이 공동체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겠나. 어른이 있어서 규범이 지켜지고, 우정과 사랑으로 인해 협력하지 않았던가!
자네나 나나, 숱한 배신과 오해, 능력의 부족함에 좌절하면서도 한가지 붙들고 지키고자 했던 것은 여기 사람이 있고, 그들의 미래가 좀 더 나아지기를 희망했던 것 아닌가? 가진 것 하나 없이 혼돈의 시대 앞에 서 있다 한들 아까워할 나이가 지났네. 그래서 나는 여태껏 그래왔듯이 사람이 있는 곳으로 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싶네.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오래 살겠나? 같이 남은 날들을 추슬러보세. 우린 비록 잊혀 가는 삶이지만 우리 부모가 그리 했듯이, 나름은 남아있는 이들의 반짝이는 삶들에 스며 있는 우리 인생의 흔적을 보면서 위로하고 감사하기로 하자. 즐거웠던 우리의 웃음, 찬란했던 우리의 이야기, 고뇌하던 우리의 아픔들 그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지 않은가?
그러니 아직은 동행하자. 낮게 좀 더 낮은 곳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맞추며 손을 내밀자. 서로의 교감을 통하여 동행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임을 증명하자. 그것이 단지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때로는 서로를 버티게 하는 힘이란 것을 믿자. 그래서 훗날 우리가 추억될 때 헌신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를 이야기하도록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