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葛藤)과 모순(矛盾)
2025년 01월 24일(금) 11:21

을사년(乙巳年) 설 명절이다. 지난 과거에 갈등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오해와 그로 인한 묵은 앙금을 풀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날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가자는 자가 정화(淨化)의 의미가 담긴 중요한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그래서 우리는 밀린 외상값도 갚고, 미워했던 이에겐 미안함을 털어내는 사과를 하고, 고마웠던 분이나 존경하는 분에겐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로 예를 표한다. 그러나 금 년 설 명절은 "과세(過歲) 편히 하셨습니까?"라며 덕담을 나누는 것조차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선포로 인한 탄핵 사태가 정국을 엄청난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지지와 반대의 양 진영은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고, 국민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엄중한 시국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하며 갈등(葛藤)을 해소해야 하는 때에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감에 맞닥뜨려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여론의 향배다. 형식적으로는 오로지 8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손에 나라의 명운이 걸린 듯 보이지만 헌법은 국민의 총의(總意)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헌법재판관들도 국민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신념이나 이해관계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갈등(葛藤)은 사전적 의미로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이라는 글자를 조합한 것으로 칡은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고, 반대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서, 두 개체가 얽히면 풀기가 매우 어려운 모습이 된다. 게다가 칡과 등나무는 질겨서 자르기도 굉장히 힘들고 뿌리까지 얽히고설켜 뽑기도 힘든 나무다. 이 두나무의 질기고 자르기 힘들어 보이는 걸 비유하여 개인이나 집단 서로 간의 의견충돌 및 마찰을 이르는 말이다.

갈등은 당사자들의 타협이나 제삼자가 개입하면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긴장 상태나 언쟁의 단계를 지나 말보다는 행동이 나타나는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조기에 수습하지 않으면 수긍하기 어려운 쌍방이 편을 짜고, 상대의 체면을 깎고, 급기야는 진영의 힘을 과시하여 상대방을 위협하는 단계에 진입한다. 통제 불능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쯤 되면 해법을 찾을 방법이 사실상 어렵게 된다. 서로를 헐뜯으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여 상대를 공격하고 어느 일방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은 공멸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멸 직전의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가 구성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탄핵심판' 변론, 각종 언론매체의 방송대담에서 진보, 보수 논객들이 하는 주장들을 보면 정치를 잘 모르는 일반 서민의 기준으로도 말도 되지 않는 모순(矛盾)투성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TV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는 걸 참느라 애를 먹는다. 내가 했던 지난 과오(過誤)나 입장에 대한 변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듯 염치란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한다.

특히 국민의 대변자라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그 정도가 도를 넘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의 범위를 제대로 행사하며 대의 정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국민을 등에 업고 진영의 승리나 자신의 권력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역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한민국의 행정, 국방 등이 마비될 정도로 최고위층을 증인 내지는 참고인 등으로 불러다 놓고 제 주장만 하고 호통치며 자기 진영의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는 답변은 안중에도 없다. 참석한 증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존중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려면 뭐 하려고 불러서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키고 갈등만 심화시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내용을 파고들면 더욱 점입가경이다. 스스로 모순(矛盾)의 늪에 빠져 객관성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순(矛盾)은 춘추전국시대의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자가 있었다. 그가 방패를 칭찬하며 말하였다. "내 방패는 견고해서 그 어떤 물건으로도 뚫을 수 없다." 그리고서는 창을 칭찬하며 말하였다. "내 창은 날카로워서 그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있다." 누군가가 말하였다. "그럼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 사람은 대답할 수 없었다.」 무릇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같은 시공간에서는 양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논리 따위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창 모(矛)와 방패 순(盾)을 써서 모순(矛盾)이라고 한다.

최근의 화두는 단연코 법치(法治)다. 내 진영의 요구대로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면 정의로운 일이고 사법부가 독립되어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진영은 이 땅에 법치는 죽었다고 아우성이다. 한 예로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한쪽은 사법부가 살아있다고 칭찬했으나 다른 한쪽은 현직대통령의 구속으로 우리나라의 국격이 훼손되고 법리의 적용이 잘못된 것이라며 사법부는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성난 군중이 사법기관을 침탈하는 사상 초유의 폭력적 사태로 이어졌다.

며칠 뒤 대통령경호처장 직무대행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검찰에서 기각되었다. 공수처가 사법부에 청구한 대통령의 구속영장은 발부되는 데 경찰에서 의뢰한 대통령경호처장 직무대행에 대한 구속영장은 검찰에서 기각시켰다. 야당은 검찰이 대통령을 비호(庇護)하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난리가 났다. 모 의원은 청문회에서 대통령도 구속되었는데 일개 경호처장 직무대행이 뭐라고 청구기각이 말이나 되느냐? 고 호통을 쳤다. 똑같이 법을 집행하는 법치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스스로 법치의 기준을 달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만약에 상황이 바뀌어 1심에 징역형을 선고받은 거대 야당의 대표가 구속상태로 항소를 치르고 있다면 정국은 또 어떻게 되었을는지? 법의 재단으로부터 보호되면 정의로운 일이고, 그 반대면 불의인가? 지금은 '자녀 입시 비리' 등으로 형의 확정을 받고 징역을 살고 있지만, 지난 총선을 앞두고 조국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딸 논문 대필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국회 입성 1호로 발의하겠다."고 했었다.

한미동맹에 중독되어 미국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은 정작 자기의 아들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가 출마를 계기로 한국 국적으로 바꿨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지낸 모 의원은 배우자인 변호사 수임료 등의 수입으로 1년 사이 재산이 41억이나 증가해서 전관예우의 의혹을 사기도 했으며 자기가 검사 재직시절 기소했던 사기범을 변호하고 있는 것이 들통이 났지만 연일 사이다 발언으로 청문회의 스타가 되어 있다. 어디 이뿐인가? 이루 셀 수 없는 '내로남불'하는 정치권을 바라보며 어떤 기대를 이들에게 걸어야 하는지 심히 우려스럽다. 정치권 밖의 어린 학생에게 장래의 희망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국회의원"하고 답했다. 왜냐고 물으니 "왠지 놀고먹는 것 같아서요"하고 답하는 이 허탈한 현실을 그냥 웃고 넘겨야만 하는 건지 참담하다.

향후 정국은 국민을 볼모로 민심 몰이를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갈 듯하다. 어느 편이 여론의 지지를 더 많이 얻어 내느냐 하는 것이 권력의 장악에 성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회생하느냐? 아니면 공멸하느냐 하는 것은 정치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정치권이 버려놓은 이번 설 명절은 우리가 공멸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더한 국난에도 슬기롭게 극복해낸 저력을 가진 민족답게 맹목적으로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는 주권자로서의 자리를 확인하는 그런 명절이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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