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명의 남해시론] 경계인(境界人)
2025년 03월 07일(금) 11:05

사전적 의미의 경계인(境界人)이란 오랫동안 소속됐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금방 버릴 수 없고, 새로운 집단에도 충분히 적응되지 않아서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말한다. 이 말은 나치즘을 등지고 미국으로 향한 쿠르트 레빈(K. Lewin, 1890∼1947)이 사용한 심리학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용어가 회자 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경계인으로 묘사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2003년 재독 송두율 교수가 간첩혐의로 구속 기소 되어 재판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김일성에 대한 찬양 의사를 굽히지 않아 실형을 선고받은 이후 다시 주목되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인 2002년 당시 독일의 뮌스터대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자신을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 경계인'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방인(異邦人)이 철저한 외부자로서 타자로 규정되며, 소속되지 못한 자로 존재한다면 그에 반해 경계인은 완전한 외부자가 아니다. 그는 어느 한 편에 완전히 속할 수 없지만, 동시에 두 세계를 이해하고 넘나드는 존재다. 하지만 경계인은 때때로 이방인으로 낙인찍힌다. 명확한 위치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경계인은 불확실성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작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난해한 시국 상황은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물음을 반복해서 던진다. 탄핵의 지지자인가? 아니면 반대자인가? 혹은 경계에서 머물며 양쪽을 넘나드는 자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정체성의 고민을 넘어,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와의 관계를 규정짓는 근본적인 삶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트라우마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시국은 사람들을 명확한 선택의 기로로 내몰았다. 찬성과 반대, 협력과 저항이라는 흑백 논리 속에서 중립적인 입장은 비겁함으로 간주 되고, 지지하는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모호함은 곧 배척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삶이란 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구획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가장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들일 런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정치도 패션이다. 패션은 단순히 옷을 입는 행위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 사회적 위치, 문화적 흐름을 반영하는 중요한 표현 방식의 흐름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옷이 특정 스타일, 색상,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표현하듯이 이념과 의식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히피 패션은 반문화 운동과 평화주의를 상징했고, 1980년대의 파워슈트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관련이 있다. 패션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실용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패션은 어떤 그룹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개성을 강조하며 차별화를 도울 수도 있다. 특정 브랜드의 옷을 입음으로써 경제적·사회적 계층을 드러내기도 하고, 스트리트 패션을 통해 대중문화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이처럼 패션은 일정한 주기로 변화하고 재해석된다. 과거 유행했던 스타일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으며, 새로운 트렌드도 종종 기존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다. 패션은 단순한 옷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개인과 사회,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적 현상이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정치도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변화하는 흐름이며 절대적 가치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시대가 변하여 좌측으로 편입되기도 우측으로 편입되기도 하는 경우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가? 그런 혼돈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지극히 편향된 사고를 고집하는 불통의 인격체이거나 역사의 흐름을 변화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정체된 시각으로 이분법적 재단을 하려 하는 위험한 파시스트다.

역사는 종종 경계인들이 만들어왔다. 혁신과 변화는 주로 경계인들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고뇌하는 지성을 가진 경계인은 어느 한쪽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며, 기존의 질서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왔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했던 윤동주는 경계인이었다. 그는 조선인이었지만 일본 유학을 하며 일본 문화와 사상을 접했고, 그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정의하고, 저항의 언어를 만들어갔다. 그의 작품은 조국에 대한 애정을 품으면서도 일본의 문학적 영향을 반영하는, 경계인의 시선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산가족들의 사례도 경계인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들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종종 정치적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 놓여 있었다. 이들의 삶은 경계에 서 있는 자의 고통을 대변한다.

더 나아가, 독일 분단 시대의 베를린 시민들도 경계인의 전형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동독과 서독 사이에서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을 때, 본래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서베를린에서 동독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동독에서 서베를린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에 온전히 흡수되지 못했다. 그들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정치적·사회적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야 했다.

또 다른 사례로,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에서의 아시아계 이민자들도 경계인의 위치에 놓였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외국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출신국으로 돌아가면 미국화된 사람으로 보였다. 특히 2세대 이민자들은 부모 세대의 문화와 미국 문화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이처럼 경계인은 단순히 어느 한쪽에 속하지 못한 존재가 아니라, 양쪽을 이해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자들이다.

한국사회에서도 경계인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대립 속에서 양쪽을 아우르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지형은 종종 극단적인 대립 구도로 흘러가며, 중도적 입장이나 융합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환영받지 못한다.

극명한 이념으로 대립 된 전쟁을 겪은 분단의 비극이 낳은 산물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는 진보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외교적으로는 보수적 시각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양 진영에서 모두 배척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인들은 새로운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고, 한국사회가 보다 균형 잡힌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방인과 경계인 사이에서의 혼돈은 결코 약점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경계인은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존재다. 한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나는 과연 이방인인가, 경계인인가? 혹은 이 질문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되새겨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확실성 속에서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어쩌면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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