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배움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추사 글씨에는 시간이 스며 있다.
그의 유묵(遺墨)은 단순한 형식 넘어, 오랜 사유와 삶의 무게를 품고 있다"
"한 글자, 한 획마다 수많은 고뇌와 연습, 실패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우리가 쉽게 놓치는 본질적 가치인 '깊은 이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2025년 11월 17일(월)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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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표 서예가이자 학자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평생을 바쳐 독자적인 서체를 완성했다. 그는 단순히 한자의 필법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 금석문(金石文)과 상형문자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풍을 구축했다. 훗날 '추사체(秋史體)'라 불리게 된 이 서체는 단순한 붓놀림의 결과물이 아니라, 깊은 사유와 인내, 끈질긴 집념이 응축된 정신의 결정체였다.
"열 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천 개의 붓을 닳게 했다(磨穿十硏 禿盡千毫, 마천십연 독진천호)"라는 표현은 김정희가 직접 남긴 말은 아니지만,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진정한 거장은 타고난 재능보다 끊임없는 수련과 성찰로 완성된다. 추사의 삶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위대한 예술가의 흔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오늘날 정보와 학습 도구는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학습 태도와 자세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학생들은 빠르게 익히고 문제 푸는 데는 익숙하지만, 쉽게 잊어버린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면서, 교육은 깊이보다 속도를 중시한다.
그러나 진정한 배움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추사의 글씨에는 시간이 스며 있다. 그의 유묵(遺墨)은 단순한 형식을 넘어, 오랜 사유와 삶의 무게를 품고 있다. 한 글자, 한 획마다 수많은 고뇌와 연습, 실패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쉽게 놓치는 본질적 가치인 '깊은 이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학생들은 빠른 성과보다 깊이 있는 사고를 배워야 한다. 개념을 곱씹고, 질문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지식이 자라난다. '추사체'가 단순한 서체를 넘어 하나의 '정신'으로 존경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움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천천히 익혀야 할 삶의 태도임을 그의 글씨가 말해준다. 김정희는 스스로 자신의 글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할 만큼,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수련을 이어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배움을 찾아 다시 붓을 들었다.
오늘날 교육은 너무 쉽게 성공을 강요하고, 실패를 두려움으로 만든다. 아이들은 작은 실수에도 쉽게 낙담하고,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이제는 방향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진정한 배움은 깊은 성찰에서 시작되며, 실패를 견디는 힘에서 완성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만의 길을 찾고, 진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다. 교육은 아이들이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며, 실패 자체를 귀중한 학습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정희의 삶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교육 현장은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을 넘어, 학생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도록 돕는 장이 되어야 한다. 김정희가 날마다 벼루 앞에 앉았던 이유는 외부의 강요나 평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열정과 사명감 때문이었다. 자발적인 배움이야말로 진정한 학습의 원동력이다. 오늘날 교육도 질문하고 탐구하며,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배움의 동반자가 되어야 하며, 수업은 결과보다 '배움 그 자체'에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배움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에 따라 학습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공교육이 지향할 모습이다. 가정과 사회도 인내와 꾸준함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오늘날 사회는 빠른 성취와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하며, 아이들에게도 조급함을 강요한다. 그러나 아이의 성장은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는 현재의 성과보다 아이의 가능성과 노력을 믿고 기다려야 하며, 사회는 단기적 결과보다 장기적 발전을 응원해야 한다. 추사가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듯, 진정한 성장은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의 삶은 그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추사의 삶에서 특히 주목할 시기는 제주 유배 시절이다. 1840년, 55세의 나이에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함을 받아 절해고도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무려 8년 3개월 동안 위리안치(圍籬安置) 상태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삶을 견뎌야 했다. 이 고립된 시기에 완성된 '세한도(歲寒圖)'는 단순한 그림을 넘어, 인내와 자존의 깊은 의미를 담은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에도 한국 서예와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또한 추사는 유배 생활 중에도 제자 이상적(李尙迪)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이상적은 추사(秋史)의 학문과 예술 세계를 깊이 이해한 인물로, 두 사람의 서신은 외로운 유배 생활 속에서 끊임없는 사유와 배움의 힘이 되어주었다. 또한 초의선사(草衣禪師)로부터 받은 차(茶) 역시 추사가 고된 날을 견디는 큰 위안이 되었다. 이처럼 고난 속에 이어진 소통과 교류 덕분에, 추사는 고독 속에서도 한결같이 학문에 몰두할 수 있었다.
'추사체'는 단순한 글씨체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실패와 반복, 고독한 성찰 끝에 완성된 철학이자, 정신의 상징이다. 오늘날 교육은 학생들이 성적보다 배움의 의미를 먼저 깨닫고, 그 과정에서 성장의 가치를 느끼며,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추사체'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써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이며, 거장이 탄생하는 길이다. 지식은 언젠가 잊히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평생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삶의 자세와 인내, 집념, 자발성, 그리고 실패를 견디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다. 진정한 교육은 정답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길을 찾도록 이끄는 과정이다. 추사 김정희의 삶과 그가 남긴 서체는 오늘날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의 끊임없는 탐구와 창조적 사고는 교육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내면의 성숙과 자율성의 본질을 담고 있다.
선현들의 삶에서 배우는 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