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자사업 유치에 따른 마을분열, 기업과 행정은 책임없나

쏠비치 2억 보상에 또다시 설리마을 공동체 분열 조짐
어촌계 "오폐수가 바다로 가니 보상금은 어촌계 몫"
주민, "마을의 공식 대표인 이장조차 분배된 뒤에야 인지…"

홍성진 선임기자
2025년 11월 21일(금) 09:12
남해군 미조면 설리 마을. '눈부신 백사장'이라는 이름처럼 고요하고 아름답던 이 마을이 최근 또 다시 2억 원이라는 돈(보상) 앞에 산산조각 났다. 대명 소노그룹의 '쏠비치 남해' 리조트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오폐수 관로 매설 보상금이 최근 마을 전체의 공론화 과정 없이 특정 집단에게만 은밀히 분배되었다는 마을 주민의 제보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주민의 목소리는 단순한 주민 갈등을 넘어, 대규모 자본이 어떻게 지역 공동체의 화합과 신뢰가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자화상이다.



△'마을회' 통장 스쳐 지나간 2억 원


제보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지난 10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쏠비치 측은 리조트 오폐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관로 매설에 따른 환경 피해 보상 명목으로 2억 원을 설리 마을 측에 지급했다.
문제는 돈의 흐름이었다. 취재 결과, 이 자금은 정상적인 마을 총회나 이장의 결재 라인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쏠비치 측은 돈을 '마을회(대책위)' 통장에 입금했으나, 대책위원장은 이를 즉시 어촌계 통장으로 이체했다. 이후 어촌계는 이장과 일반 주민을 배제한 채 불과 며칠 만에 20여 명의 계원과 선주들에게 현금으로 'N분의 1' 분배를 완료했다.
어촌계의 논리는 이 보상은 마을 전체가 아니라 "오폐수가 바다로 가니 보상금은 어촌계 몫"이라는 것이다.
A씨는 "마을 전체에 '2억 원이 나왔다'는 한 줄 소식만 흘린 뒤, 전광석화처럼 돈을 나눠 가졌다"며 "마을의 공식 대표인 이장조차 돈이 다 분배된 뒤에야 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정보가 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책위원장이 어촌계원을 겸임하기에 인출이 가능했다"면서 "이 바다가 어촌계의 바다인지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이런 보상이 있었고 이렇게 처리하고 싶다는 논의는 이장을 비롯한 전체 80여 주민과 상의해야 하지 않는냐"고 덧붙였다.



△ 80세 자동 탈퇴 설리어촌계 규약은


이번 사태의 가장 뼈아픈 지점은 '배제의 논리'다. 어촌계는 규약상"80세가 되면 자동 탈퇴한다"는 조항을 내세워, 평생을 설리 앞바다에서 물질하고 고기 잡으며 살아온 마을 원로들을 보상 대상에서 원천 배제했다고 한다. 이 규약은 보상 문제 이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바다에서 평생을 마을 지킴이로 살아온 노인들에게 이럴 수는 없다"면서 "어르신들에 대한 자동 탈퇴 규약은 민자유치 대규모 사업 보상 문제에 있어서는 또다른 마을 분열과 사회적 역차별이라는 문제를 낳았다"는 취지로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바다 오염의 최전선에 있는 해녀들 또한 철저히 소외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작 바다에 직접 들어가는 해녀들은 어촌계원이 아니고 숫자가 작고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이번 보상에 대상이 아닌 반면, 펜션이나 카라반 영업을 위해 배를 사놓은 일부 주민들은 '선주'라는 명목으로 보상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어촌계의 논리는 "오폐수가 바다로 가니 보상금은 어촌계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방적 주장에 가깝다. 바다는 어촌계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설리 앞바다의 환경권과 경관 가치는 펜션업, 식당, 그리고 평온한 주거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는 마을 주민 모두의 '공유 자산(Commons)'이다. 그리고 당대의 일부 주민 것이 아니라 마을을 이어갈 후대들의 몫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멸형 보상이 아니라 마을 전체와 후대 마을사람들이 소득으로 연결시킬 항구적인 건축물 신축 등의 재산형성 방법으로 보상되어야 바람직해 보인다.
이와 관련 군내 한 주민은 "이번 사건으로 설리마을 공동체 분열이 가속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어촌계가 현재 마을지선에 종패사업을 하고 있고 직접 투자한 바다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에 대한 보상은 마땅하다.
그러나 실질 사업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 어촌계란 이유만으로 전액 나눠 갖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마을분열, 기업과 행정은 책임없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기업과 행정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대명 소노그룹(쏠비치)은 거액의 보상금을 집행하면서 최소한의 거버넌스 실사(Due Diligence)도 거치지 않았다. 주민 총회 의결서나 투명한 분배 계획을 확인하지 않고, 시끄러운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그때 그때 사안따라 '돈봉투'만 던져주고 돌아선 셈이다. 이는 전형적인 '체크북 외교(Checkbook Diplomacy)'로, 기업이 지역 갈등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상 창구에 대해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주민들의 총의를 중심으로 보상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남해군청의 태도 또한 미온적이다. 마을회와 어촌계는 공적 성격을 띤 조직임에도, 행정은 이를 '민-민 갈등'으로 치부하며 개입을 꺼리고 있다. 관리 감독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뒷짐을 지는 사이, 힘없는 고령자와 말없는 주민들의 권리는 사라진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 많은 군민들은 남해군은 대형 민자사업 유치를 위해 도로 등 기반시설에 막대한 군비를 투자해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적극적으로 보상 문제에 개입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대규모 개발 사업의 보상금은 특정 통장이 아닌 지자체나 신탁 기관이 관리하는 '에스크로(Escrow)' 계좌에 예치하고, 주민 총회의 승인을 얻은 투명한 계획서에 의해서만 집행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 주민들의 성찰이다. 2억 원은 가구당 나누면 400만 원 남짓이다. 그 돈과 맞바꾼 것은 수백 년을 이어온 이웃 간의 정(情)과 신뢰다.
"설리는 참 예쁜 동네였는데..."라는 제보자의 탄식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호소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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