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미래신문기획◁ 남해사람들의 물메기 아리랑… 남해바다의 못난이 효자, 물메기가 다시 돌아왔다

"옛날 그물에 걸려도 다시 바다로 보냈던 그 물메기 이제는 군민의 겨울 살림을 책임지고, 뒷바라지까지 해주는 든든한 효자"
'남해다름' 이름을 더 널리 알려야 한다. 이건 남해에서 7번 씻어 해풍에 말린 진짜 명품임을 알려야 한다"

이태인, 홍성진 기자
2026년 01월 23일(금) 11:55
ㅣ시린 찬바람과 함께 돌아온 반가운 손님 '물메기'
 해마다 동짓달 찬바람이 불어오면 남해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조항과 상주면 백련항의 덕장을 먼저 살핀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줄지어 매달린 물메기가 남해의 칼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풍경은 단순히 계절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넘어, 남해의 겨울이 깊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예전에는 생김새가 험하고 살이 흐물거린다고 해서 그물에 걸려도 재수 없다고 다시 바다에 던져버려 '물잠뱅이'라 불렸던 그 녀석이다. 바다에 던져질 때 '텀벙' 소리가 난다고 '물어'라고도 불렸던 이 못난이가 이제는 우리 군민들의 겨울 살림을 책임지고,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해주는 든든한 효자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우리 바다에서 물메기가 씨가 마른 것처럼 잡히지 않아 어민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다행히 올해는 물메기가 다시 우리를 잊지 않고 돌아오고 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물메기가 왜 우리 남해를 잠시 떠났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이 귀한 녀석을 어떻게 아끼고 귀하게 팔아야 할지 군민들의 눈높이에서 하나하나 깊이 있게 살펴봤다.
 
ㅣ못생겨도 신통방통한 물메기의 신비한 일생과 생존 방식
 우리가 물메기라 부르는 녀석의 진짜 이름은 '꼼치'다. 비늘도 하나 없고 몸 전체가 젤리처럼 흐물흐물해서 뼈 없는 고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녀석은 수심 100미터 깊은 바다의 엄청난 압력을 견디며 사는 아주 강한 녀석이다.
 물메기의 피부가 그렇게 미끈거리고 흐물거리는 이유는 깊은 바다의 차갑고 강한 압력에 몸이 으깨지지 않도록 물을 가득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물메기가 겨울에 알을 낳고 나면 바로 기운이 다해 죽는 '1년만 사는 물고기'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수산과학원 발표를 보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산란을 마친 녀석 중 일부가 죽지 않고 다시 깊은 바다로 돌아가 2년 넘게 산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우리가 올해 산란장에 들어온 물메기를 너무 어린 녀석까지 싹쓸이하지 않고 잘 보호해주면, 내년과 내후년에 훨씬 더 크고 듬직한 물메기가 되어 다시 우리 남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남해읍시장에가 보면 작은 물메기도 끼워 팔 듯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즉, 물메기는 한철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우리가 정성껏 가꿔야 할 우리 바다의 소중한 자산인 셈이다.
 
ㅣ남해바다가 예부터 물메기 천국이었던 지리적 이유
 왜 옛날부터 '물메기' 하면 남해를 으뜸으로 쳤을까? 답은 우리 남해의 독특한 지형과 바다 환경에 있다. 우리 남해의 해안선은 굽이굽이 휘어 있어 파도를 막아주는 섬과 내만이 많다. 특히 앵강만과 진해만처럼 육지 안쪽으로 쑥 들어온 바다는 파도가 잔잔하고 물살이 세지 않아 물메기가 알을 붙여 낳기 좋은 해조류와 바위가 가득하다.
 물메기는 산란할 때 알을 덩어리째 바위나 해조류에 붙여놓는데, 물살이 너무 세면 알이 다 떠내려가 버린다. 하지만 우리 남해 바다는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해서 물메기들이 안심하고 대를 이을 수 있는 완벽한 '산후조리원' 역할을 해왔다.
 또한, 겨울철 남해 바다의 온도는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10도 내외를 유지하는데, 이것이 갓 태어난 어린 물메기들이 겨울을 나기에 가장 좋은 '유치원' 환경이었던 것이다.
 
ㅣ통계로 본 30년 세월 동안의 우여곡절과 어장의 이동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물메기 어황도 참으로 오르락내리락 부침이 많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해바다는 말 그대로 물메기 반 물 반이었다. 당시에는 동네 강아지도 물메기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풍족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5년을 기점으로 서해안(충남, 전북)에서 물메기가 남해보다 더 많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통계를 보면 현재 서해에서 잡히는 양이 우리 남해보다 무려 3배나 많다. 우리 남해 어민들 입장에서는 안방을 서해에 내준 꼴이 되어 속상한 일이지만, 수산 통계는 물메기의 주 무대가 조금씩 북쪽으로, 그리고 시원한 서해 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물고기가 이동한 것을 넘어, 우리 바다의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이기도 하다.
 
ㅣ바다가 더워지니 시원한 여름 휴양지를 찾아 떠난 야속한 물메기
 왜 물메기는 정든 남해를 두고 멀리 서해까지 발길을 돌렸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바닷물 온도' 때문이다. 물메기는 찬물을 아주 좋아하는 냉수성 어종인데,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남해 바다도 예전보다 훨씬 따뜻해졌다. 특히 여름철에 남해바다 수온이 25도를 넘어가면 물메기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물메기들은 여름철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여름 휴양지'를 찾아 나섰다. 서해는 수심 깊은 곳에 '황해냉수대'라고 불리는 거대한 찬물 덩어리가 여름에도 남아있다.
 물메기들이 그리로 피서를 가는 것이다. 특히 작년 겨울에는 날씨가 워낙 포근해서 남해 연안의 수온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았다. 물메기들이 산란하러 들어오고 싶어도 '따뜻한 물벽'이 입구를 막고 있으니 들어오지 못했던 것이다. 작년에 우리가 금값인 물메기를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ㅣ올겨울 다시 돌아온 물메기가 전하는 기적 같은 반전 소식
 다행히 올해는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 2025년 12월 기점으로 볼 때, 우리 남해군의 물메기 위판량은 작년 같은 시기에 비해 5배나 늘어났다. 항구마다 물메기 배를 따는 손길이 분주하고 어민들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ㅣ왜 다시 돌아온 걸까?
 첫째는 '기다림의 결실'이다. 지난 2년 동안 바다가 너무 더워 산란을 꾹 참으며 외해에서 버텼던 물메기들이 올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산란을 위해 한꺼번에 밀려 들어온 것이다. 둘째는 하늘이 도운 '강추위' 덕분이다. 올해는 유독 일찍 찾아온 강력한 한파가 남해 연안의 수온을 10도 이하로 뚝 떨어뜨려 주었다. 물메기들이 좋아하는 찬물이 대문을 활짝 열어주니, 녀석들이 신이 나서 고향인 남해 바다로 다시 헤엄쳐 들어온 것이다.
 
ㅣ남해 어머니들의 정성과 해풍이 만든 마법
 서해에서도 물메기가 많이 잡히지만, 전국 식객들이 여전히 '남해 물메기'를 최고로 치고 비싼 값을 치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남해 어민들과 어머니들의 지독할 정도의 정성 때문이다.
 물메기는 몸 겉면에 미끈거리는 진액이 아주 많다. 이걸 대충 씻어서 말리면 비린내가 나고 살이 물러져서 맛이 떨어진다. 우리 남해 사람들은 이 진액을 완벽하게 없애기 위해 얼음장 같은 찬물에 적어도 6~7번은 반복해서 헹궈낸다. 그렇게 뽀얗게 손질된 녀석을 남해의 맑은 칼바람과 따스한 겨울 햇볕 아래 매달아 놓으면,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이 쫀득쫀득해진다. 감칠맛이 살 속 깊이 응축되는 이 과정이 바로 우리가 자랑하는 '반건조 물메기'의 비밀이자 남해만의 독보적인 기술이다.
 
ㅣ제값을 받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산업이 되려면
 이제는 물메기를 많이 잡는 것만큼이나 고생해서 잡은 만큼 '제값'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어민들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몇 가지 숙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첫째, 우리 군의 보증 마크인 '남해다름' 이름을 더 널리 알려야 한다. 시장에 가면 다 똑같은 물메기처럼 보이지만, "이건 남해에서 7번 씻어 해풍에 말린 진짜 명품이다"라는 것을 소비자들이 알게 해야 한다. 품질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가격을 차별화해서 비싸도 찾는 사람이 있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잡아야 한다. 요새 도시 사람들은 생선 만지는 걸 무서워하고 번거로워한다. 그들을 위해 양념까지 다 넣어서 냄비에 붓기만 하면 되는 '물메기탕 밀키트'를 만들어야 한다. 캠핑 가는 젊은이들이 남해 물메기탕을 찾는 세상이 오게 해야 한다.
 셋째, '고향 사랑 기부제'를 똑똑하게 활용하자. 객지에 나간 우리 자식들과 향우들에게 고향의 맛을 선물로 보내주면, 어민들은 판로가 생겨 좋고 향우들은 고향의 정을 느껴서 좋다. 이것이 바로 우리 남해 공동체가 함께 살길이다.
 
물메기는 남해 사람들의 살아있는 마음이다
 취재 중에 만난 상주면의 한 어르신은 찬물에 텃 부르튼 손마디를 문지르며 "그래도 올해는 물메기가 돌아와 주니 겨울날 걱정이 덜하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은 단순히 돈을 벌어 좋다는 의미를 넘어, 고향 바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안도감의 표현이었다.
 물메기는 단순한 생선 한 마리가 아니다. 거친 파도와 뜨거운 바다를 견디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우리 어민들의 끈기이며, 힘든 겨울을 함께 견디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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