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들의 삶에서 배우는 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역사와 교육으로 민족의 주체성을 일깨운 단재 신채호

"역사를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일깨우고,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교육의 본질을 단재 신채호는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단재 신채호의 삶과 사상은 교육이 민족 해방의 수단을 넘어 인간 정신의 자율과 각성을 이끄는 과정임을 증명한다"

2026년 01월 23일(금) 12:05
최 성 기 前) 남해해성고·창선고 교장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의 삶과 사상은 단순한 개인의 성장사를 넘어, 역사적 사유와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민족의 정신적 독립을 추구한 여정이었다. 그의 사상적 발자취는 오늘날 우리에게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다시금 던지게 하며,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그는 역사의 증인이자 근대 교육의 가능성을 연 사상가로서, 교육을 단지 민족 해방을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고, 주체적 사유와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실천의 장으로 여겼다.


단재는 1880년 충청도 대덕군(현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조선은 상층의 부패와 하층 백성의 궁핍이 극심했으며, 외세의 침탈로 국권이 흔들리던 격동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통해 고전 교육을 익혔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하며 학문적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그는 청년기부터 개화운동과 민족 독립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는 그의 교육관에 중대한 전환을 불러왔다. 조선의 전통을 단순히 계승하는 데 머물지 않고, 민족의 발전을 위한 실천적 지식으로 재해석하려 했다.


1905년 이후 그는 <대한매일신보>의 기자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논설을 집필했고, 평양의 대성학교에서는 교사로서 청년 교육에 힘썼다. 그는 또한 1907년 창립된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의 핵심 일원이었으며, 독립군 양성을 위해 설립된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와 같은 실천은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민족 자각과 행동을 유도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신채호가 청년기에 품었던 교육에 대한 열망과 반성적 성찰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점차 민족 해방과 자아 회복을 지향하는 교육적 비전으로 발전했다. 당시 조선의 교육은 상류층의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에 불과했고, 지식인 역시 이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꾀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채호는 이러한 틀을 벗어나 백성을 위한 교육, 곧 자기 비판적이며 혁신적인 사고를 기르는 교육을 지향했다.


단재의 역사 저작인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는 단순한 고대사 기술이 아니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민족의 자주성(自主性)을 강조하며, 고조선·부여·고구려를 주체적인 민족의 역사로 재조명하고자 했다. 이는 식민주의적 시각에서 한국사를 왜곡하던 당대 주류 역사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역사 서술을 통한 민족정신 회복의 시도였다. 1931년 간행된 『조선상고사』를 비롯하여, 『독사신론(讀史新論)』(1908)에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하며, 역사를 민족 주체성(主體性)과 자각의 장으로 삼고자 했다. 그에게 역사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을 일깨우고 현재를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었다.


신채호(申采浩)는 "자기의 역사도 모르고,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는 민족은 존재할 자격이 없다"라고 역설하며, 역사(歷史)를 통한 교육이 민족정신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단순히 과거를 암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천적 지혜를 얻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의 역사관은 곧 교육 철학이자 민족 자각을 이끄는 지적 실천이었다. 독립운동(獨立運動)에 투신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 중에도 교육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했으며, 독립운동가들에게 단순한 군사 기술을 넘어, 민족의 자유와 자주를 위한 사상을 함께 가르쳐야 함을 역설했다. 신채호에게 교육은 이론이나 기술의 전달이 아니라, 실천적 사고와 민족의식을 내면화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깨어 있는 백성을 길러 인간 정신의 해방을 실현하고자 했다.

신채호(申采浩)가 살았던 시대는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시기였지만, 오늘날에도 '교육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특히 입시 중심의 경쟁교육 체제에 머무르고 있는 현재, 우리는 단재(丹齋)의 교육 철학을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신채호가 주장한 민족 독립을 위한 교육은 오늘날 자아실현과 비판적 사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교육의 의미를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교육의 본질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주체적인 사고를 기르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시되는 교육 현실 속에서 더욱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 획일화된 평가와 경쟁 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많은 학생이 주체성과 창의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신채호의 교육적 유산은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단재 신채호가 꿈꾼 교육은 '자기 비판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지닌 민족'을 육성하는 일이었다. 그는 교육을 통해 깨어 있는 백성을 기르고, 인간 정신의 해방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가 주장한 '역사를 통한 교육'은 단순한 민족주의(民族主義)를 넘어,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 그리고 실천적 책임감을 함양하는 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는 "역사는 사람을 만든다"라는 그의 말에 담긴 교육적 메시지의 핵심이었다.


결국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는 역사(歷史)와 교육(敎育)을 동시에 사유하고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의 저작과 활동은 오늘날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자주적 사고를 통한 민족적 각성과 인간 해방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비록 그의 이상이 당대의 제약 속에서 완전히 실현되진 않았지만, 그 유산은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실천 과제로 남아 있다. 단재가 제시한 교육의 본질은 '기억을 재구성하고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에 있으며,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는 핵심적 기반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남해미래신문 홈페이지(http://www.nhmirae.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