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이태인, 홍성진 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4월 03일(금)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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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미래신문과 남해FM공동체라디오방송이 공동 기획한 '남해인 초대석'은 6.3지방선거를 앞두고 남해군수 예비후보들의 숨겨진 '인간적 면모'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따라서 이번 [남해인 초대석]은 후보자의 차가운 공약이나 날카로운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가 지닌 깊은 무늬와 그 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온기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공인으로서의 외면적 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한 시대, 한 세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다. 공통 주제인 남해에 대한 기억과 남해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심어주길 기대한다. 이번 특집은 남해군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아 각 후보측의 희망일자를 신청받아 진행되었다. 고원오, 류성식, 문준홍 예비후보자 편은 다음주에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그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현직 장충남 군수다.
그는 방송 시작과 함께 "우리들의 대화를 통해 군민 여러분께서도 편안한 주말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다정한 인사말로 입을 뗐다.
화면 너머 전해지는 그의 표정에는 선거를 앞둔 후보자의 날 선 긴장보다는, 고향 선후배와 나누는 정겨운 담소에 대한 설렘과 진정성이 묻어났다.
행정가로서의 엄격함을 잠시 풀고, 한 사람의 '남해인'으로서 걸어온 길, 그의 삶의 여정을 들어봤다.
[고향의 기억] 산과 들, 바다의 정서가 빚어낸 '남해 DNA'
인간 장충남의 유년 시절은 남해의 자연 그 자체였다. 산 연접지에 위치한 집에서 자란 그는 스스로를 '산골 출신'이라 기억한다.
도마초등학교로 향하던 길목의 넓은 들판, 그리고 학교 바로 밑에서 넘실대던 도마 바다. 이 입체적인 풍경은 소년 장충남의 정서를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토양이자 원천이 되었다.
그는 "제 뼛속 깊은 곳까지 자연의 정서가 듬뿍 함량되어 있다"며, 성인이 되어 복잡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그 자연이 준 정서(평정심)과 에너지가 큰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당산 마당'은 소년들의 해방구이자 아지트였고, 겨울이면 저수지 얼음 위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손을 녹이고 썰매를 타던 기억은 지금도 그에게 가장 아련한 향수로 남아있다.
가을철 탈곡 후 쌓아놓은 벼 낫가리 속으로 몸을 숨기며 술래잡기하던 풍경은 그가 가진 인간미와 서정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오히려 그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는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면 예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해 책을 마음껏 접할 기회가 적었던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그는, 다시 돌아간다면 외로움과 싸우던 어린 자신에게 "괜찮다, 너무 염려하지 마라, 그 정도는 네 인생에서 아무 문제도 없다"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건네고 싶다고 밝혔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유년의 고단함을 딛고 일어선 한 남자의 강인함과 자기 연민이 교차하고 있었다.
[인생의 파도] 성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들듯…
인생의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충남 군수에게도 거센 파도가 들이쳤던 시기가 있었다.
대입 실패 후 삼동면 동천 양화금의 '해관암'이라는 작은 암자에서 보낸 재수 시절은 그에게 고독과 성찰을 동시에 안겨준 시련의 터널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학원 대신 선택한 산사에서의 공부는 그를 남들보다 일찍 철들게 했다.
그곳에서 그는 인생을 경험하며 고시생들과 어울렸고, 삶의 다양한 층위와 인간의 고뇌를 목격했다.
이후 경찰대학 1기로 진학하며 공직의 길로 들어섰지만, 감수성이 풍부했던 '문학 소년'에게 공권력의 집행 현장은 때로 자신의 부드러운 성향과 충돌하는 고뇌의 연속이었다.
특히 사회적 격변기였던 80년대 말, 치안 현장에서 마주한 시대의 혼란은 그를 더욱 단단한 철학을 가진 공직자로 단련시켰다.
그는 시련을 대하는 자신만의 철학을 "성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는 격언으로 요약했다.
또한 "상처를 받은 조개가 그 아픔을 견뎌내며 진주를 품듯, 우리 인생의 고통도 결국은 보석이 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현재 겪고 있는 치열한 선거 과정 또한 자신이 극복해야 할 큰 파도이자 군민을 위한 진주로 거듭나는 과정임을 받아들였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하면서도, 이 무거운 운명마저 남해를 위한 헌신으로 승화시키려는 그의 모습에서 중견 행정가의 깊은 관록이 느껴진다.
[가치와 인연] "사람은 버릴 사람이 없다"는 대지의 가르침
장충남은 삶의 가장 큰 스승으로 '남해의 대자연'과 '남해 사람들'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남해로 내려와 현장에서 활동하며 만난 수많은 농민, 어민, 소상공인들에게서 도심의 화려한 고관대작들에게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고결한 인격과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말했다.
특히 그에게 깊은 울림을 준 것은 한 무명의 어르신이 남긴 "사람은 버릴 사람이 없다"는 짧고도 강렬한 한마디였다. "돌담을 쌓을 때 납작한 돌, 둥근 돌, 모난 돌, 작은 돌이 모두 제 자리에 박혀야 견고한 담이 되듯, 우리 사회의 구성원도 저마다의 쓰임과 가치가 있다"는 가르침은 그의 목민 철학의 핵심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전해준 "타인의 배신까지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크게 성장하는 것"이라는 조언은, 시기와 모함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선출직의 길 위에서 그를 지탱하는 든든한 중심추가 되었다.
그는 건축가 가우디의 스승이 자연이었듯, 자신의 가장 위대한 스승 역시 남해의 투박한 사투리를 쓰는 이웃들이라고 말한다. "돈을 너무 알아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몰라서도 안 된다"는 평범한 이웃의 비유 속에서 성인의 가르침을 발견해내는 그의 시선은 늘 권위보다는 낮은 곳의 진실을 향해 있었다.
[성찰과 소신] '목민관'의 자리는 함부로 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과를 마친 고요한 밤, 혹은 주말의 한적한 임도 산책길에서 장충남은 진짜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그는 홀로 있는 시간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첫 구절을 입버릇처럼 되새긴다고 했다. '다른 벼슬자리는 구할 수 있지만, 목민관의 자리는 함부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다.
이는 그만큼 지방 수령의 자리가 엄중하며, 개인의 명예보다 주민의 안위를 위해 무한한 희생을 요구한다는 경계의 목소리다.
과거의 관치행정 시절과 달리, 오늘날의 군수는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와 민원, 법적 한계 속에서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외로운 자리라 말한다.
그는 "군수 자리는 비난과 비판을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인내의 자리"라며,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오늘 하루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절대 화내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한다고 밝혔다.
그가 추천 곡으로 꼽은 임영웅의 '인생 찬가' 가사처럼, 그는 지도도 없이 걸어온 자신의 삶의 굽이굽이를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신 그 거친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운명처럼 공평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군수라는 직책이 주는 권위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책임감의 무게에 집중하는 그의 소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고해 보인다.
[미래와 유산] 영원히 기억될 가장 아름다운 이름, '남해 사람 장충남'
장충남이 바라는 최종적인 지향점은 수만 가지 미사여구가 붙은 화려한 명성이 아니다.
그는 훗날 세월이 흘러 군수가 아닌 자연인으로 기억될 때, 그저 '남해 사람 장충남'이라는 단 한 문장의 형용사로 군민들의 기억 속에 남기를 원한다.
그는 "남해 군수라는 직책은 제 공직 인생의 마지막 자리이자 가장 영광스러운 소명"이라며, 자신의 모든 역량과 진심을 이 땅에 아낌없이 쏟아부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남해의 풀뿌리 하나, 나뭇잎 하나가 저를 키웠으니 이제는 제가 남해의 거름이 되어 보답해야 할 차례"라는 그의 말에는 고향에 대한 깊은 부채 의식과 가슴 뜨거운 사랑이 동시에 녹아있다.
'남해다운', '남해인'이라는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라는 장충남 . 그는 지금의 엄중한 국제 정세와 위태로운 기후 변화 속에서도 남해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서로의 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합친다면, 반드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행복의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의 눈빛에는 남해의 미래를 향한 흔들림 없는 신념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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