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16개월 차 양성호 씨의 '찐' 남해 사랑법

"남해는 도전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기회의 땅입니다"

이태인 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7월 03일(금) 08:29

지족 바다의 은빛 물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기 훨씬 전인 새벽 4시 반, 금산 자락 밭 언저리에는 어김없이 우렁찬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울에서 건설업을 하는 양성호씨가 남해의 땅에 발을 디딘 지 어느덧 16개월이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훔치며 목에 걸친 수건을 질끈 동여맨 그의 모습은 이제 영락없는 베테랑 농사꾼이다. 귀농 16개월 만에 3,700평의 대농으로 우뚝 서고, 지족과 가천에서 펜션을 운영하며,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짜장면 봉사와 불교 포교사 활동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양성호(57) 씨. 남해 FM '이정수의 정오의 노래방' 방송 출연 직전까지도 밭에서 갓 수확한 단호박을 용달차에 가득 싣고 와 이웃들과 나누기 바빴던 그를 만나, 남해라는 파라다이스에 뿌리내린 한 귀농인의 가슴 뛰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남해와의 인연, 불교 포교사로


양성호 씨의 남해 행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았다. 서울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남부러울 것 없이 바쁜 삶을 살아가던 그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교 포교사로서의 사명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국에서 손꼽히는 불교 성지인 남해를 자주 찾게 되었고, 넓고 깊은 사찰의 규모에 비해 스님들을 보좌할 포교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목격했다.
"남해 전역에 포교사가 단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넓고 많은 사찰들을 어떻게 혼자 다 감당하실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성지순례를 위해 서울에서 남해로 내려오는 신도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다름 아닌 '숙소'였다. 금요일 저녁 늦게 내려와 제대로 쉴 곳도 없이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거나 새벽에 부랴부랴 짐을 싸서 올라가는 이들의 불편함이 양 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불편하면 남들도 똑같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그래서 우선 삼동면에 조그만 한옥을 마련해 신도들의 쉼터로 내어주었습니다. 반응이 정말 뜨거웠죠."스타렉스 9인승 차량으로 일곱 여덟 명의 순례객들을 모시던 소박한 여정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늘어나는 인원을 위해 미조면의 펜션을 임대했고, 결국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2년간 비어 있던 펜션까지 도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남해의 부족한 인프라를 온몸으로 부딪쳐 메워나가는 그의 추진력은 이미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150평에서 3,700평 농사.. 땅은 정직하게 보답한다


숙박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그에게 다가온 다음 과제는 '귀농인들의 실질적인 생계 문제'였다. 귀농 귀촌을 꿈꾸는 수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내려왔다가도, 결국 안정적인 수익 창출의 장벽에 부딪혀 짐을 싸서 돌아가는 현실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귀농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부터 직접 농사를 지어 본보기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죠. 농사라곤 평생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던 제가 겁도 없이 뛰어든 겁니다."시작은 소박하게 150평의 땅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실함과 진정성은 이웃 주민들과 마을 이장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노는 땅, 묵히는 밭이 있으면 "성호 씨가 한번 일궈봐라"라며 흔쾌히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렇게 작년 겨울, 첫 농사로 시금치 재배에 성공하며 당당히 '농업경영인' 등록을 마쳤다. 첫 수확의 기쁨과 함께 통장에 찍힌 농사 수익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짜릿함과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후 농업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는 3,700평에 이른다.
겨울철 시금치를 시작으로 봄에는 홍감자, 여름에는 단호박과 무려 2,500주의 고추 농사까지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평생 남해에서 농사지어 온 원주민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한 규모다.
"건설업을 오래 해온 덕분에 농기계를 다루는 데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큰 강점이었습니다. 기계화 농업을 통해 혼자서도 넓은 땅을 효율적으로 경작할 수 있었죠.
물론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서면, 이동면, 금성 등을 돌며 밭을 살피는 정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농촌 어르신들이 그러시더군요. '농사는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큰다'고 말이죠.
그 말이 정말 맞습니다. 농사는 사람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내가 땀 흘린 만큼, 게으름 피우지 않은 만큼 정직하게 수확으로 보답합니다. 그 뚜렷한 결과에 매일 감동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 잘 사는 것은 의미 없다" 이웃과 나누는 상생의 삶


양성호 씨의 진가는 3,700평이라는 대농의 규모에만 있지 않다. 그가 일궈낸 농지 중 상당수는 다른 귀농인들과 새로 남해로 들어오는 청년들을 위한 '나눔의 터전'으로 쓰인다.
"농사를 처음 시작하려는 귀농인들에게 밭을 개간하고 장비를 다루는 일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리 장비로 밭을 다 일궈놓고, 귀농인들에게 구획을 나누어 분배해 줍니다. 그분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농업경영인 자격을 취득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귀농인들의 아픔과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기꺼이 남해 귀농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고 있다.
또한 군 장병들을 위해 무료 숙소를 지원하고, 남해 곳곳에서 펼쳐지는 짜장면 봉사 활동에 참여하며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깊숙이 녹아들었다. 최근에는 용문사의 승원 스님을 보좌하여 어르신들을 위한 5개월간의 봉사 프로젝트를 훌륭히 마무리지었다.
"봉사는 저에게 단순한 희생이 아닙니다. 귀농인의 일상 속에서 무료함을 달래고 삶의 활기를 찾는 가장 아름다운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남해는 마음만 먹으면 이웃과 따뜻한 온정을 나누며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정말 많습니다."



남해를 향한 거침없는 쓴소리, "말하는 만큼 행동한다"


남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양 씨의 눈에는 남해의 빈 구석과 관광객들의 불편한 목소리가 하나둘씩 밟히기 시작했다. 보통의 이방인이라면 속으로만 삭였을 문제들을, 그는 당당하게 밖으로 꺼내 외치고 행동으로 옮긴다.
"관광객들과 소통하다 보면 '남해는 참 좋은데 1박 2일이면 족하다', '두 번 오기는 힘들다'는 뼈아픈 소리를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해가 지고 나면 즐길 거리와 먹을거리가 뚝 끊기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저녁 7~8시에 남해 터미널에 도착해도 갈 곳이 없고, 대중교통은 끊깁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이동면에 늦은 시간에도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식당을 오픈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펜션에서는 입·퇴실 시간제한을 없애는 파격을 시도했죠. 관광객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남해의 여유를 오롯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그가 가장 목청을 높여 강조하는 것은 바로 '교통 편의'와 '빈집 문제'다.
밤 8시면 끊겨버리는 시골 버스 노선을 주말이나 장날만이라도 밤 10~11시까지 연장해 준다면, 전통시장도 살아나고 쏠비치 등 대형 리조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남해 안쪽까지 들어와 술 한 잔 곁들이며 밤 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
"시골 한복판 빈집을 허물어 어르신들이 쓰지도 않는 운동기구를 갖다 놓는 보여주기식 행정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빈집들을 개보수해서 청년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예쁜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꾸민다면 남해는 몰라보게 활기차질 것입니다.
저는 말로만 떠들지 않습니다. 행정 처리가 늦어 답답하면 제 사비를 들이고 제 노동력을 써서 직접 콘테이너 하우스를 짓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떠드는 만큼 반드시 책임지겠다는 약속, 그것이 남해 군민들에게 신뢰를 얻은 비결입니다."



지족 바다를 '여수 밤바다'로... 남해의 새로운 밤을 꿈꾸며


그의 최종 목표는 남해의 지족 바닷가를 여수 밤바다 못지않은, 음악과 낭만이 흐르는 활기찬 해안가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지역 뮤지션들과 함께 버스킹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안동과 서울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캐릭터 퍼포먼스 대회'(코스프레 축제)를 남해에 유치하기 위해 실사단 조사를 마치고 기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서브컬처 문화를 조용한 시골 바닷가에 이식해, 남해를 전국에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젊은이들이 주말이면 남해를 떠나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그들이 남해 안에서 충분히 놀고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문화를 만들어주면 떠나지 않을 겁니다. 남해는 강원도의 거친 바다와 달리 어머니의 품처럼 한없이 잔잔하고 따뜻한 바다를 가졌습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 위에 멋진 문화의 옷만 입혀준다면 그 어느 도시도 부럽지 않은 최고의 고장이 될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양성호 씨는 귀농 기촌을 망설이는 도시민들에게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메시지를 던졌다.
"망설이지 말고 남해로 내려오십시오. 먹고살 수 있는 농사 기반과 편히 쉴 수 있는 주거 공간의 기초는 제가 땀 흘려 다 닦아 놓았습니다. 의지와 열정만 가지고 몸만 오시면 됩니다. 남해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닙니다. 도전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기회의 땅입니다."



남해의 미래를 그리다


양성호 씨와의 인터뷰는 한 편의 역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진한 여운을 남겼다.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 같은 열정, 그리고 '말한 대로 실천하고 책임진다'는 그의 굳은 신념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정체되어 있던 남해 공동체에 신선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원주민보다 더 깊고 뜨겁게 남해를 사랑하는 그의 당찬 발걸음이, 다가올 미래의 남해를 얼마나 더 젊고 풍요롭게 변화시킬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양성호의 인생 2막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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