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 농기계 진입 불가·칡덩굴 무성한 '영농여건불리농지' 상당수
농가, "팔 수도, 빌려줄 수도 없는데 처분명령?"
홍성진 선임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9월 11일(금) 14:55
남해군의 한 산자락. 지목은 '전(밭)'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현장은 사람 키를 넘어서는 칡덩굴과 잡목이 빽빽하게 우거져 사실상 임야나 다름없다.
급경사도에 진입로가 좁아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전형적인 '영농여건불리농지'다.
이 땅을 상속받은 A씨는 최근 농지전수 조사 내용을 듣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A씨는 "땅을 팔려고 부동산에 내놓은 지 오래다, 농지은행에 내놓더라도 진입로가 없고 경작이 어려워 매입이나 임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사가는 사람도 없고 농지은행도 거절할 땅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영농여건불리농지'애물단지 ?
1996년 농지법 제정 이후, 정부는 경사도가 높고 영농 조건이 열악한 농지의 유휴화를 막기 위해 '영농여건불리농지' 제도를 도입했다.
이들 농지는 농지취득자격증명 신청 시 농업경영계획서 제출이 면제되고 비농업인의 소유와 임대차가 자유롭게 허용되어, 한때는 일반 농지에 비해 매매가 유연한 토지로 분류됐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세월이 흐르며 농촌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농업이 대형 기계화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농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산간 경사지 농지는 가장 먼저 버려졌다.
청년 창업농들은 대형 기계 작업과 스마트팜 설치가 가능한 평지 우량농지(농업진흥구역)로 몰려들고, 기존 고령농들은 신체적 한계로 험준한 경사지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결국 영농여건불리농지는 완화된 규제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완전히 외면받는 '기형적 맹지'로 전락했다.
공공기관도 외면 하면… 소유자만 '이행강제금' 폭탄 위기
더 큰 문제는 공공의 안전망이어야 할 '농지은행'마저 이들 농지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지은행은 은퇴농이나 비농가의 농지를 매입·수탁하여 청년농 등에게 재임대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지만, 자체 심사 기준에 따라 경작 여건이 나쁘거나 칡덩굴 등으로 폐농지화된 토지는 매입 및 수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시장 매매도, 공공 매입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근 강화된 농지법에 따른 '농지이용실태조사'는 소유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경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분명령이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매년 공시지가의 25%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남해군 등 산간·해안 지형이 많은 지자체 관계자는 "영농여건불리농지의 상당수가 사실상 영농이 불가능한 상태이지만, 법적으로 '농지'로 분류되어 있어 처분 의무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기 어렵다"며 현장 행정의 한계를 토로했다.
"농지 구분 재조정 및 진입로 개설 등 정비대책 마련하라"
전문가들은 투기성 농지와 영농이 불가능한 지형적 불리농지(영농여건불리농지)를 동일한 기준 대로 처벌하는 현행 농지법의 실체적 모순을 지적한다.
지역 농업인들은 "농기계 진입이 불가능하고 칡덩굴로 덮인 불리농지는 소유자의 투기 의도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농촌 해체의 산물"이라며 "농지은행의 매입 조건 완화를 통해 공공이 이를 매입하거나,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칡덩굴 제거 및 진입로 개설 등 영농 기반 정비 사업을 지원하는 등 실질적인 구제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매매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방치된 영농여건불리농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농지 행정 속에서 영농여건불리농지 농촌의 고령 소유자들과 지역민들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