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들의 삶에서 배우는 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진정한 무기는 검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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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30(금) 11:28
[선현들의 삶에서 배우는 최성기 선생의 교육이야기] "진정한 무기는 검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목이다"

유성룡과 『징비록』이 오늘의 교육에 던지는 질문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은 위기 속에서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국가와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함을 보여준다"
"『징비록(懲毖錄)』에 담긴 반성과 성찰은 오늘날 교육이 길러야 할 문제 해결형 인재의 방향을 제시한다"

발행연월일 : 2026년 01월 30일(금) 11:27
최 성 기 前) 남해해성고·창선고 교장
국난의 시기, "진정한 무기는 검과 활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안목이다." 임진왜란의 거센 격랑 속에서 조선을 지탱한 인물,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이렇게 시대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무장도, 군사 전략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위기 속에서 필요한 인재를 발굴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실패를 반성하며 후세를 위한 기록을 남겼다. 오늘날처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 그가 남긴 통찰은 다시 되새겨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서애를 단순히 영웅으로 미화하거나 정쟁 속 희생자로 보는 시각을 넘어, 그의 행적은 '교육과 지도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서애 유성룡은 경북 안동 향촌 사림 출신으로, 퇴계 이황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닦으며 성리학적 이상 정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유성룡은 1566년(명종 21년) 2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 전적, 홍문관 부교리 등 중앙 관직을 두루 거쳤고, 이후에는 지방관으로서 백성을 보살피는 데도 헌신했다.

그러나 그의 공직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선조 즉위 후 조정은 서인, 남인, 북인 등으로 분열되었고, 서애(西厓)는 서인으로서 당파 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당파를 넘어, 국정 운영의 실질적 방향과 인재 기용의 공정성을 더욱 중시하며 일관된 태도를 견지했다. 이러한 자세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그 진가를 발휘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은 사전 준비 없이 패퇴를 거듭했다.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한양(漢陽)을 점령했고, 선조(宣祖)는 의주까지 피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극심한 위기 속에서 서애(西厓)는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군사와 민정을 총괄하는 비상 직책을 맡아 전시 행정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단순한 행정 지휘를 넘어, 인재 발탁에 탁월한 혜안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순신(李舜臣)의 역량을 인정하고 전라좌도수사(全羅左道水使)에 추천했으며, 정기룡(鄭起龍)·곽재우(郭再祐)·고경명(高敬命) 같은 의병장들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이는 형식적 충성보다 실질적 역량을 중시한 선택이었으며, 전란(戰亂)의 국면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서애(西厓)는 또한 민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무기를 동원하는 것보다 백성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방 자치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 생존의 열쇠임을 꿰뚫고 있었다. 당시 왕조 권력은 흔들렸지만, 서애가 발탁한 인물들은 민중과 함께 싸우며 조선을 지켰다.

전란(戰亂)이 끝난 뒤, 정치적 반대 세력의 모함으로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서애(西厓)는 지난날을 돌아보고 「징비록(懲毖錄)」을 집필했다. '징비(懲毖)'란 "앞날을 경계하기 위해 지난 잘못을 반성한다"라는 의미다.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록(回顧錄)이 아니라, 정책 실패의 기록이자, 지도자 교육을 위한 교과서였다. 「징비록」에는 전쟁 중 조정의 허둥댐, 인재 기용의 실패, 지방 수령들의 무능함 등이 냉정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실책조차 숨기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감정 없이 분석하며,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이겨내야 하는지를 차분히 풀어냈다.

이는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위기관리 매뉴얼'이자, 오늘날로 치면 '공공 리더십 교육서'에 해당한다. 「징비록」에서 서애(西厓)는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큰 피해를 불러오는지"를 경고하면서, "올바른 인재를 고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 명의 인재가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경험으로 증명했다. 이 책은 또한 공직자의 덕목을 이야기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지혜를 갈고 닦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애(西厓)의 삶과 『징비록』이 주는 교훈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오늘날 교육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수능점수와 성적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문제 해결형 인재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인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패를 분석하고 새로운 관점을 기르는 훈련이 학교에서부터 필요하다. 서애가 이순신(李舜臣)을 발탁했듯 교육은 성적이 아닌 잠재력을 읽고 기회를 주는 일이다. 오늘날 학교는 얼마나 많은 '이순신'을 놓치고 있을까? 제도적 틀에 갇혀 인재를 선발한다면, 그것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육은 지식 전달에만 그치지 말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야 한다. 서애가 『징비록』을 통해 정치와 인재 발굴, 전쟁 승패의 핵심을 분석했듯, 우리는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교육의 핵심은 단순히 시험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은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위기의 시대에 인간의 가능성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믿고 실천한 교육자였다. 그는 당파보다 인재를, 체면보다 반성을, 권위보다 공동체 생존을 우선시했다. 그의 교육적 통찰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지혜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미래 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는 지금, 서애의 삶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키우고, 어떤 가치를 남기고 있는가?"

끝으로, 서애(西厓)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책임감 있는 지도자, 비판적 사고를 지닌 시민, 위기에도 침착한 인재를 얼마나 잘 길러내고 있는가? 그의 교육적 교훈은 오늘날 교육자들이 실천적 지혜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그 안의 교훈은 되풀이된다. 서애의 '징비(懲毖)' 정신은 오늘날 교육의 방향을 묻고 있다. 지금 교실에서 우리는 그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 존재하는 참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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