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인터뷰◁ 박주탁 수산중공업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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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1(금) 14:03
▷향우인터뷰◁ 박주탁 수산중공업 전 회장

수산중공업 설립자… 중국에서 활발하게 사업 중
회사명에 고향이름 '수산' 고집 "IT시대, 남해에서도 벤처 가능"

2020년 08월 21일(금) 13:47
(주)수산중공업 창립자인 박주탁 전 회장을 만나 공덕역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었다.

박 전 회장은 남해군 창선면 수산리에서 고(故) 박경순·김또막춘 부모님의 1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유년시절 영특한 수재였다. 경남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수산중공업 창립시에 태어나 자란 창선면 수산리에서 '수산'이라는 이름을 가져와 수산중공업 명칭을 정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박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1979년 수산무역을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수산중공업을 창립한 후에는 특수중장비 생산업체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 수산중공업과 함께 수산특장, 수산정밀 등 계열사를 보유한 중장비 및 정밀기계 제조·판매·수출 기업으로 성장해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었다. 박 회장은 1990년대 들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수산정밀, 수산스타, 수산섬유기계, 수산정공을 잇달아 설립해 그룹사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수산그룹은 1996년 무선정보통신 사업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자금난에 시달린 수산그룹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끝내 부도나고 말았다.

박 회장은 부도를 맞고 어려운 시절을 지내다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4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일본 지인이 투자하여 수산기계유한공사(水山機械(有))를 설립했다. 박 회장이 이 회사의 동사장을 맡고 있다. 동사장은 중국에서 기업의 대표자를 일컫는 말이다. 박 회장은 자신이 부도의 어려움을 이기고 중국에서 재기한 배경을 "내가 시골 태생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소꼴 베고 지게를 지고 나무를 가야했던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재기하여 오늘에 이른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중국에서도 '水山(수산)'이라는 회사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수산기계유한공사는 주로 광산공구 개발, 반도체 특수분야와 5G 소재 분야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중국인들과 합작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전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박 회장은 "百折不屈(백절불굴),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박 회장은 아내 김복연 여사와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박윤희씨는 중국 절강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에서 수산기계유한공사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딸 박송이씨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 미국회계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현재 우리은행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박 회장은 "노년기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무기는 걷기와 채식이 다. 걸으면 휴식, 건강, 힐링,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된다"며 독자들에게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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