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자음과 모음, 그림이 만나 아름다움 담은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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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자음과 모음, 그림이 만나 아름다움 담은 작품으로

▷남해人◁ 평생학습프로그램 '캘리그라피' 회원전
"손글씨 쓸 일 없는 요즘, '캘리그라피'는 어때요?"
올해로 세 번째 캘리그라피 회원전 <우리가 만난 선물같은 말들>,
6월 20일(목)~7월 6일(토)까지 전시

백혜림 bhr654@nhmirae.com
2024년 07월 05일(금) 15:01
▲캘리그라피 회원전 개회식 때의 회원들 단체사진.

TV, 컴퓨터를 넘어 손 안의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정보들과 인적 네트워크의 접근성이 손쉬워지고 인공지능(AI) 기능이 보편화 되는 등 우리는 디지털 혁명의 물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동차의 자율주행, 사용자의 음성 인식과 같이 범용성과 간편함을 가진 자동화 시스템들이 고안되고 보급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현대에 우리는 번거로운 수작업들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얻었으며, 이는 문서를 작성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의 키보드로 타이핑하면 되는 간편함 속에서 우리가 직접 손아귀에 펜을 쥐고 글씨를 쓰게 되는 경험은 흔치 않은데 이조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손글씨를 쓸 기회가 많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정갈한 손글씨를 동경한다. 손글씨보다는 타이핑에 익숙해져 직접 쓴 글씨체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이를테면 서예나 오늘 소개할 '캘리그라피'에 흥미를 갖고 배움을 위해 수업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아름답고 유려한 한글과 그림의 조화가 한 폭을 이루는 '캘리그라피'는 한글로 이뤄진 한 문장, 문단에서 미적 영감을 얻어 하나의 작품처럼 만들어지며, 감상을 위해 찾는 이들도 꽤나 많다. 어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어떤 것들이 예술적으로 변모하기도 하는 대표적인 예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날 찾은 화전도서관 1층의 로비에서 개최된 캘리그라피 회원전에서는 그림과 같은 글씨들로 채워진 캔버스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고, 회원전을 직접 일궈낸 주인공들 역시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편집자 주>

■그야말로 <우리가 만난 선물같은 말들>, 글자를 그림처럼, '갬성' 담은 '캘리그라피'

이날 화전도서관의 로비를 가득 메운 작품들은 회원들이 직접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우리가 만난 선물같은 말들>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회원전은 올해로 세 번째로 개최된 것이라고 한다. 캘리그라피 클래스의 강의를 담당하는 김성희 강사는 '캘리그라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글씨를 그림처럼 쓰고 표현하는 것', 즉 글씨에 희노애락을 담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는 언어라는 넓은 틀 속 문장, 문단의 글자와 그림이 가진 선과 의미가 적절한 융화를 이뤄 작품 외적인 아름다움, 내면의 감동까지 추구하고 있다고.

김성희 강사는 "요즘에는 글씨에 수채화, 수묵화까지 접목해서 화려하게 보이게 꾸미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러한 작품들이 보는 즐거움은 더욱 클 수는 있으나, 본디 '캘리그라피'라는 것은 글씨에 감정을 담는 것이 본(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캘리그라피'란 그림이 아닌 글자가 주라는 것을 설명했다.

▲딸의 머리카락에 물감을 묻혀 '쿵'이라는 글자와 함께 표현한 작품.


■"12명의 회원들이 뭉쳐 처음부터 끝까지 일궈낸 회원전, 너무나도 뜻 깊어"

이날 수강 프로그램의 회원들이 회원전을 개최하기까지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회원전을 꾸릴 수 있었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김성희 강사의 말에 따르면 "첫 수업은 2014년부터 시작했고, 현재 캘리그라피 수업의 회원들은 총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회원들은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까지 다양한 세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했다. 첫 수업 이후 좋은 반응을 얻어 꾸준히 등록하는 회원들도 생겨나고 회원들이 수업에 열심히 임하면서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또한 전시회를 열게 된 경위에 대해선 "수업만 진행하다보니 재미가 없을 것 같아 회원전을 개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이 화두가 돼 2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웃으며, "이번 회원전의 작품들을 다함께 준비하면서 40대 50대 회원들에게 전시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알려줌으로써 캘리그라피 회원전을 다시 열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되물림하기 위해 열게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회원전 개최의 예산은 '0원'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회원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함께 모금한 자금으로 마련된 회원전이라 더욱 뜻깊다며, "우리 회원들 중 작품을 만든 후 미국에 가야 하는 분이 계셨다. 출국 전에 그 분께서 회원전 개최할 때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찬조금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회원들도 금전을 비롯한 찬조를 하며 마음을 보탰다. 덕분에 소고기 회식을 해도 될 정도로 여유롭게 모였다"며 웃었다.

회원들 역시도 "이번 회원전을 통해 회원들끼리의 화합이 이뤄졌고, 마음도 많이 편해진 느낌이다"며 입을 모아 뿌듯한 소감을 전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회원의 작품.


■예쁜 손글씨 쓰고 싶어 신청한 '캘리그라피', 오롯이 나만의 감성 담아낸 작품까지

캘리그라피 회원들은 각자 캘리그라피 수업을 신청하게 된 계기들이 있다고 한다.

수업의 최연장자인 80대 어르신 회원은 "배우는 걸 원래부터 좋아했다. 그림과 글씨에 관심이 있다보니 캘리그라피 수업에 신청하게 됐는데, 낮에는 농사에 전념하고 밤에는 캘리그라피 야간반 수업을 들으며 배우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며 말 그대로 주경야독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캘리그라피 수업의 회장을 맡고 있는 회원은 "원체 글쓰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소위 말하는 '악필'이어서 고민이었는데, 도서관에 다른 강좌 들으러 갔다가 옆 강의실에서 캘리그라피 수업을 하고있더라. 그래서 서툰 손글씨를 교정해보고자 캘리그라피 수업을 신청하게 됐고, 지금까지 하고 있다"며 손글씨를 예쁘게 쓰고 싶어 지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젊은 주부 회원들 역시도 수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에 캘리그라피 수업을 신청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나 또한 손글씨가 고르지 못한 '악필'이라서 예쁘게 글을 써보고 싶어 신청하게 됐다. 캘리그라피 수업을 통해 작품을 그려나가면서 심신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어 정말 좋은 것 같다"며 소감을 전했다. 캘리그라피 강좌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회원 역시도 "외지에 있다가 남해로 오게 된 지 얼마 안 되서 아버지와 함께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찾다가 캘리그라피 수업을 접하게 됐다. 아버지께서는 안 하신다고 하셨지만 혼자서 꿋꿋하게 꾸준히 다니고 있다"며 웃으며 말했다.



■회원전에 전시된 작품들, 각각의 의미와 감성 담겨 있어 더욱 특별해

캘리그라피 회원전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회원들 각각의 개성이 녹아든 글씨들이 흰 캔버스의 여백에서 춤을 추듯 유려한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회원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 좋은 글귀를 선택해 화선지에 수십 번을 써 내려가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고 한다. 때론 한 글귀를 100번 이상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심지어 작품 낙관과 회원전 도록까지도 직접 만드는 등 첫 단추부터 마무리까지 회원들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과정들 역시도 들으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회원전을 준비하며 재미있는 일화들도 들을 수 있었는데, 회원전에 출품하기 위해 이토록 성심껏 만들어놓은 작품을 고양이가 찢어서 다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는 일화를 털어놓으며 회원들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회원전에 전시된 작품들에서의 글귀들은 회원들 각각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담겼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법으로 탄생한 작품들, 그리고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글귀들은 그림들과 어우러져 회원들 자신을 나타내고 있었다.

딸의 머리카락 한 움큼을 찧어 표현한 작품,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글귀로 담아낸 작품, 그림 대신 캔버스에 천과 같은 조형물을 덧대어 글귀와 함께 표현한 작품들까지 모두 하나의 완성작을 만들기 위해 글귀를 선택했을 때부터, 그려내고 마무리하기까지의 회원들의 감정과 감성이 느껴지는 듯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회원들의 개성이 담겨져 있다. 이 작품은 이런 뜻이, 저 작품은 이런 의미가, 예쁘게 쓴 글씨들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각자의 표현법을 캘리그라피에서 배운다."



■"좋은 글귀로 심신의 안정과 치유 얻는 캘리그라피, 앞으로도 많은 사랑 받았으면"

평생학습프로그램의 일환인 '캘리그라피' 수업은 수강생 모집과 동시에 얼마 안 가서 마감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하며, 9월에 강좌가 다시 개설될 예정으로 8월 중순경쯤 수강신청을 새로이 받는다고 한다.

회원들은 "주부들이 이런 전시회를 열기 쉽지 않은데,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강사분께 감사드리고 싶다. 주부들이나 평범한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전시회나 교류의 장 공간이 더욱 생겼으면 좋겠고,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화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면을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치유가 많이 되는 것을 느낀다. 손글씨가 적어진 요즘 이런 경험들이 필요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예쁜 그림과 글자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캘리그라피', 때론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린 맑은 시냇물의 고요함과 같은 심신을 달래는 글귀 한 문장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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