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남해인 초대석] - '남해정원' 일구는 류경완 "고교 시절 집안 형편으로 다시 남해로 돌아왔을 때, 그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 즐겨찾기 추가
  • 2026.04.03(금) 17:26
▶ [특집-남해인 초대석] - '남해정원' 일구는 류경완 "고교 시절 집안 형편으로 다시 남해로 돌아왔을 때, 그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정리 이태인, 홍성진 기자
발행연월일 : 2026년 04월 03일(금) 16:57

남해미래신문과 남해FM공동체라디오방송이 공동 기획한 '남해인 초대석'은 6.3지방선거를 앞두고 남해군수 예비후보들의 숨겨진 '인간적 면모'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따라서 이번 [남해인 초대석]은 후보자의 차가운 공약이나 날카로운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가 지닌 깊은 무늬와 그 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온기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공인으로서의 외면적 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한 시대, 한 세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다. 공통 주제인 남해에 대한 기억과 남해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심어주길 기대한다. 이번 특집은 남해군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아 각 후보측의 희망일자를 신청받아 진행되었다. 고원오, 류성식, 문준홍 예비후보자 편은 다음주에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남해FM공동체라디오와 남해미래신문이 공동 기획한 [남해인 초대석]의 두 번째 손님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해군수 출마를 선언한 류경완 예비후보다.
이날 만남은, 정치인 류경완이기 이전에 남해라는 척박하면서도 따뜻한 땅을 35년간 묵묵히 지켜온 '남해 사람 류경완'의 서사를 온전히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류경완 후보는 "치맥 한잔하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운을 뗐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고향을 향한 오랜 세월의 무게와 애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후보자의 화려한 이력서 너머, 그를 형성해온 소중한 기억과 시련, 그리고 그가 꿈꾸는 남해의 내일을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고향의 기억] 상주 백사장의 파도 소리가 키운 자립심



인간 류경완의 인생을 관통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단연 '그리움'이다.
그는 남해의 보물이라 불리는 상주에서 태어나 그곳의 푸른 바다를 보며 유년 시절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의 소년기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이별과 마주해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진주로 전학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따뜻한 품을 떠나 누나와 함께 자취 생활을 견뎌야 했던 11살 소년의 가슴에 남은 것은 지독한 향수와 외로움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하숙집 아주머니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학교가 끝나면 늘 고향 바다가 그리웠고, 부모님이 보고 싶어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훔치곤 했죠. 그때의 고독은 저를 일찍 철들게 했습니다."하지만 그 지독한 외로움은 소년을 무너뜨리는 대신 '자립심'이라는 단단한 뼈대를 선물해주었다.
스스로 밥을 챙기고 자신의 일과를 오롯이 책임져야 했던 그 시절의 고독은 훗날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심과 강인한 생활력의 원천이 되었다. 그의 마음속 '영원한 아지트'는 여전히 상주 해수욕장의 눈부신 백사장이라고 소개했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자맥질하며 더위를 식히고, 피서객들로 북적이던 고향의 활기찬 풍경은 그가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돌아가는 정신적 고향이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다시 남해로 돌아왔을 때, 그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모두가 고향을 떠나던 시절, 대학을 졸업한 청년 류경완이 "나라도 고향을 지키며 일 해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어쩌면 소년 시절 겪었던 그 깊은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파도] 다섯 번의 도전, 길 위에서 흘린 절실한 눈물



정치인으로서 류경완 후보가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한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그는 경남도의원 선거만 무려 다섯 번을 치렀다고 한다. 두 번의 가슴 아픈 낙선, 그리고 이어진 세 번의 당선. 현재 3선 도의원이라는 무게 뒤에는 후보로서 길 위에서 보낸 고통과 인고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두 번의 낙선 후 세 번째 선거를 준비하던 그 암담했던 시기'를 회상했다.
"선거철이 되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길거리에서 하루에도 수천 번씩 절을 합니다.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다 보면 문득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는 회의감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었다.
만약 출세나 권력이 목적이었다면 진작에 그만뒀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진심과 역량을 오직 남해를 위해 쓰고 싶다는 그 절실함이 저를 버티게 한 유일한 힘이었습니다."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홀로 흘린 그 눈물은 그를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의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낙선의 깊은 수렁 속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시장 어귀에서 만난 할머니가 거친 손을 맞잡으며 건넨 "고생한다. 이번엔 꼭 될 끼다"라는 투박한 격려 한마디였다. 그 절실한 진심이 군민들의 마음과 닿았을 때, 비로소 그는 '일할 기회'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을 수 있었다.



[가치와 인연] 인생의 궤도를 바꾼 스승과 30년 우정의 가수



인간 류경완을 만든 내면에는 두 명의 소중한 인연이 있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방황하던 그를 잡아준 목사님이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목사님의 가르침은 소년 류경완의 가슴에 평생 꺼지지 않을 불을 지폈다.
그 가르침은 그가 대학 시절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했고, 20대 청년 시절 '남해사랑청년회'를 창립해 지역 운동에 투신하게 만든 인생의 북극성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특별한 인연은 가수 김원중이다. 1991년, 27살의 패기 넘치는 청년 류경완은 문화적으로 소외된 고향 후배들을 위해 '푸른 이 한마당'이라는 대규모 공연을 기획했다.
기획사도 없고 예산도 전무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오로지 진심 하나만을 믿고 무작정 광주로 내려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김원중을 붙잡았다. "돈은 한 푼도 없지만 남해 아이들에게 좋은 노래와 꿈을 들려주고 싶다"는 무모하고도 눈물겨운 호소에 김원중은 기꺼이 응답했다고 한다.
"그때 김원중 씨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시더니 남해까지 선뜻 내려와 주었다.
그 인연이 30년 넘게 이어져 지금도 형님 아우 하며 지냅니다. 매년 남해를 찾아 소박한 메기탕을 나누는 그 오랜 인연이야말로 제가 인생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이날 방송에서 류 후보가 신청한 곡은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였다. 그가 믿는 가치는 그 어떤 화려한 수사도, 정교한 정책도 결국 '사람'을 향해 있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남해, 사람이 존중받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이자 마지막까지 완수하고 싶은 평생의 숙제일 듯 하다.



[성찰과 소신]'진심'은 결국 통한다는 낙관의 철학



바쁜 일과를 마치고 홀로 남겨진 고요한 시간, 류 후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짧은 휴식조차 결국 남해라는 화두로 귀결된다고. 다큐멘터리를 보다가도 "저 풍경을 우리 남해의 어느 마을에 접목하면 어떨까?", "저 첨단 기술을 우리 농어민들에게 알려드리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24시간을 남해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고 말한다.
그는 지친 이들에게 남해의 산행을 추천한다. "남해의 산들은 높지는 않지만 정상에 서면 바다와 마을, 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조금만 고생해서 올라가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풍경을 만날 수 있죠." 그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남해는 그대로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이었다. "저는 진심의 힘을 믿습니다. 정치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고, 그 마음은 오직 진심을 통해서만 열립니다. 남해를 하나의 큰 정원으로 가꾸겠다는 제 꿈도 그 진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류 후보는 남해의 미래 비전을 '정원'이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남해의 천혜의 자연경관을 행정이 세심하게 관리하고 가꾸어, 군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외지인이 동경하며 찾아오는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을 만들겠다는 의지인 듯하다. "남해 전체를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디자인하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하고도 따뜻한 소신이 담겨 있었다.



[미래와 유산] 군민들에게 남고 싶은 이름, '찐' 남해 사람



류경완 후보가 스스로 선택한 단어는 의외로 강렬했다. 그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찐'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저는 정말 남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정치인이 아니라 속까지 남해 사랑으로 가득 찬 '찐' 남해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35년 전 남해를 지키기로 결심했던 그 청년의 순수한 마음이 지금도 변함없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60분간의 긴 여정 동안 류경완 후보가 보여준 것은 화려한 말잔치가 아니라, 고향의 흙내음과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하고도 투명한 진심이었다.
류경완 후보가 꿈꾸는 '정원'이 그가 평생을 거쳐 준비해온 '진심'이라는 거름을 통해 어떻게 만개할지, 군민들과 함께 희망의 눈으로 지켜볼 일이다.
<본 기사는 남해FM 공동체라디오 특집 방송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남해인 초대석] 본방송은 아래 QR코드를 스캔하여 유튜브 영상으로 다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TOP 5
남해
자치행정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