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유배문학관은 있는데 남해역사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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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유배문학관은 있는데 남해역사관은 없다?
김동설 kds1085@nhmirae.com
2023년 10월 20일(금) 16:42
최근 '세계기록유산 고려대장경 판각지의 현대적 재발견 심포지엄'에서 남해가 고려대장경 판각지였다'는 학계와 종교계의 학술발표 소식에 이어 현풍 곽씨 남해종친회가 약 400년 전 그룻, 도자기 등을 출토한 사실을 접했다. 두 소식은 사실상 연관성은 없다. 하지만 이 소식들을 접하며 필자는 문득 '우리 고장 남해에는 유배문학관은 있는데 왜 남해역사관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각각 다른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한 문장으로 유배문학관과 남해역사관을 대조시킬 필요는 없다. 견강부회(牽强附會)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문장으로 표현한 것은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 대한 연구와 그 결과물을 살펴볼 곳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 이전의 역사 속 남해 출신 인물이나 유물에 대한 기록은 필자 역시 남해인으로 부끄럼을 느낄 정도로 상대적으로 너무나 빈약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선, 고려, 통일신라, 신라, 가야 등등 과거 우리의 역사와 관련 남해의 인물과 유물에 대한 발굴 조명에 소흘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본다. 필자는 군내 입남조 이후 인물과 관련 유물들이 개별 집 또는 문중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이야기와 남해의 인물과 유물이 한 곳에 모셔진 역사관이나 전시관이 없어 더욱 과거 역사에 대한 빈곤함이 느껴진다. 지금부터라도 금석마을 고인돌을 비롯 비자림 마의태자, 봉화마을 삼층석탑, 고려 문장가 이규보 시에 나온 화계(花溪)는 남해 화계(花溪)일 가능성과 함께 제기된 고려 고급 차문화는 남해라는 주장, 서면 정포리가 청이도다완 가마터일 것이라는 주장 등등에 대한 사실의 재발견과 향토사학자들의 주장을 조명해 나갔으면 한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구전되어온 역사적 기록과 개연성 있는 향토사학자들의 주장이 담긴 기록들이 한 곳에 집적되어 문화나 역사를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찾고 후대에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겨주었으면 한다. 여기에 입남조 이후 문중마다 전해 내려오는 인물들에 대한 조명과 그들의 발자취를 추적한 자료들이 한 곳에 정리된다면 지역민뿐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일례로 이동 난양 출신으로 1582년 문과에 급제해 1597년(선조 30년)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적과 맞서 싸운 난계 이희급 선생 등 남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남해에 가면 남해의 역사관도 있고 유배문학관도 있다는 말이 들려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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