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 승첩제, 순국제전 등 이순신 콘텐츠 활성화 필요
팔순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는 애향심, "고향 위한 일은 언제든 헌신할 준비"
정영식 jys23@nhmirae.com
2020년 08월 28일(금)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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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량 앞바다에 1500톤급 퇴역 함정을 유치해 남해군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키워내자는 제안을 한 유삼남 전 해양수산부 장관. 지난주 본지는 유삼남 전 장관의 퇴역함정 유치 제안을 토대로 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지난주 있었던 유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퇴역함정 유치 제안을 포함해 제법 긴 시간동안 이뤄졌고, 대화는 그의 인생에서 단 한순간도 비켜나 있지 않았던 그의 고향 남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1941년, 바다가 지척인 설천 옥동마을에서 태어나 이곳 남해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그를 키웠던 바다를 지키는 해군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해군사관학교에 진학, 1964년 해군 항해소위로 임관해 1999년 해군참모총장을 끝으로 군(軍)과의 인연을 끝맺음 한 뒤에도 다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사)대한민국 해양연맹 총재로, 해양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한국해양대 교수로 일평생을 바다와 함께 해 온, 그래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향 남해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었다는 유삼남 전 장관과의 인터뷰 내용을 지난주에 이어 지면에 옮긴다.
<편집자주>
▲고향 방문을 환영하며 어려운 시간을 내어준 점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먼저 근황을 소개해 주신다면
= 이제 모든 관직과 공직에서 벗어나 가족과 가정, 그리고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남해미래신문에도 소개됐지만 요즘은 그림을 그리는데 전념하고 있다. 내 일생과 함께 해 온 바다를 주제로 이런 저런 부제들을 담아 그림을 그리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그림인데 꽤 재미가 쏠쏠하다.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탓에 그림 그릴 시간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그렇게 그린 작품 11점을 모아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최근 퇴역함정을 노량에 유치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 제안 배경이 궁금한데
= 우리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해양국가와 대륙국가의 문명이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 대륙국가는 해양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욕심이 늘 있었고, 해양국가는 반대로 전 세계의 70%인 해양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해 오면서 늘 해양과 대륙간의 충돌을 빚어왔다. 그 과정에서 잘 알 듯이 늘 역사는 해양국가의 승리로 이어져 왔다. 대영제국이 그랬고, 20세기 헤게모니를 장악해 온 미국은 해양을 기반으로 승리의 역사를 쟁취했고, 일본 등 많은 해양국가들이 바다를 기반으로 국력을 향상시켜 왔다.
이런 역사를 통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남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시 바다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의미있으리라 생각해 왔다. 대표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곳이고, 조선시대 유배객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남해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고, 다양한 특산물과 풍부한 어족자원으로 풍요로움을 누려온 곳이 남해다. 이순신과 유배객, 조선 건국설화를 안고 있는 남해, 팔만대장경 판각지인 화방사와 고현면 등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산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해 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던 차에 퇴역함정 유치를 통해 남해가 지켜온 과거의 역사문화자산과 결합돼 새로운 남해군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해군에 몸 담았던 이력이 고향 남해에 미력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교두보가 됐다.
▲퇴역함정이 유치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지
= 남해의 자산인 노량 충렬사와 거북선, 인근의 이순신순국공원, 고현면 일원의 팔만대장경 성역화 사업과 퇴역함정 유치가 연계된다면 이순신 장군의 순국지라는 어느 곳에서도 모방할 수 없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한때 이순신 장군과 연계된 다양한 지자체에서 이순신 장군을 콘텐츠로 한 지역축제부터 다양한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천편일률적인 기획과 활용으로 최근에는 많은 지자체가 이순신 장군 콘텐츠 활용에 소극적이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던 곳이나 승전 등등 유사할 수 밖에 없는 콘텐츠만 활용했기 때문이다. 우리 남해는 이순신 장군의 순국지라는 어느 곳에서도 모방하거나 가져갈 수 없는 탄탄한 역사적 근거가 있고, 임진왜란 23전23승이라는 전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 독보적인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현대 해군의 핵심전력이었던 1세대 퇴역 호위함이 유치되면 이들이 결합돼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고 이를 기반으로 관광객 유입효과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순신 순국지라는 차별성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남해군에서도 과거 노량해전 승첩제부터 현재 이순신순국제전까지 다양한 관련 축제를 개최해 왔는데, 호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 사관생도 시절부터 수 십년간 고향 남해를 찾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충렬사를 참배해 왔다. 해군에 복무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순신 장군을 동경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간 우리 남해군을 비롯해 타 지자체가 이순신 장군의 단편적인 측면에만 집중해 온 면이 크다. 이를테면 승전이랄지, 임진왜란 당시 주둔지랄지, 탄생지, 유해가 안치된 곳 등등 각자의 입장에서 다루기 쉬운 콘텐츠에만 집중해 왔다. 남해도 일견 마찬가지다. 특히 분단국가라는 안보적 위기가 상존하는 우리 나라에서 이순신 장군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무궁무진하다. 그런 측면에서 순국지라는 고유의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종합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통상 행정의 벤치마킹을 다른 지역의 좋은 사례를 모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역으로 우리 지역의 고유한 자산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기반해 타 지자체가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발굴해 내는 것이 진정한 벤치마킹이다. 과거 승첩제와 순국제전의 개최 취지를 살리되 변형되고 차별화된 방식으로 이순신 장군 콘텐츠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축제의 기본요소를 갖춰 노량과 이순신순국공원, 팔만대장경에 이르는 호국안보교육, 관광자원화의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 각계의 아이디어가 모이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각계의 아이디어를 말씀했다. 그런 차원에서 출향인사를 주축으로 고향 남해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싱크탱크로 보물섬남해포럼을 발족하고 초대 상임대표도 맡았는데, 최근 활동이 조금 침체된 듯한 느낌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이제 일선에서는 은퇴했지만 늘 고향 남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건 돕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노마지지(老馬之智 -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의 고사성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하찮을지언정 삶에서 얻은 교훈과 지혜는 누구에게나 있다. 포럼 출범 초창기 많은 원로인사들이 각계의 전문성과 역량을 기반으로 고향 남해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해 보자고 출범한 것이 보물섬 남해포럼이다. 물론 젊은 학자들이나 연구자들도 있었지만 여러 한계로 인해 이들의 역량을 담아내지 못한게 한계였다.
내부적으로는 객지에 거주중인 출향인사를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남해의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측면도 있고, 부족한 관심으로 학계의 일반론에 국한해 정책을 제안했던 것이 군민과 군정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또 군수의 성향에 따라 포럼에 대한 호의가 다소 등락을 띠었던 것도 사실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의가 될 수 있겠으나 포럼과 군정이 최초 포럼이 출범했을 당시의 취지를 되살려 포럼 구성원들에게는 남해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갖도록 유도하고 포럼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고 군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제안을 내놓음으로 해서 진정한 군정의 싱크탱크로 출향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활용되고 군정에 이같은 제언이 반영되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한다. 포럼에서도 최근의 침체를 극복하고 진정한 남해 발전의 싱크탱크가 되도록 하기 위해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잦은 접촉이 포럼의 발전은 물론 포럼에서 제시되는 정책의 성숙도와 연결된다는 점을 인식해서 좀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남해군의 행재정적 지원, 공조가 이어졌으면 한다.
▲끝으로 지역의 원로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삶을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을 하고 살았다. 때로는 제가 거쳤던 공직과 관직이 "운(運)이 좋아서 그런 것이다"라는 평가들도 있었고 물론 그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도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거둔 일신의 성공은 '늘 2인자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자평한다.
최근 그림 그리는 것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정리하는 의미로 자서전을 쓰고 있는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2인자로 살아온 것이 좀 더 높은 자리로 가게 하는 힘이 됐더라. 그래서 많은 후배들에게 그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2인자라고, 남보다 좀 뒤쳐졌다고 절대 좌절하지 말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다. 2인자는 늘 앞서 가는 1인자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늘 희망을 갖게 된다. 희망은 변화를 추동하는 동력이다. 우리 삶도, 우리 지역도 마찬가지다. 또 늘 행운과 불행은 함께 한다. 성공이라는 행운 뒤에는 늘 생각지 못한 불행이 함께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채워지면 비울 줄 알아야 하고 비운 만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시 이순신 장군 얘기로 돌아와 말을 맺자면 이순신 장군은 생전에 늘 고초를 겪었고, 주변의 시샘과 질투로 백의종군하는 상황에서도 애민사상을 바탕으로 늘 깨어있고자 했던 인물로 결국 모든 국민에게 추앙받는 성웅이자 위인이 됐다.
늘 깨어있으면서 목표를 잊지 말고 희망을 동력 삼아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군민, 남해군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주 있었던 유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퇴역함정 유치 제안을 포함해 제법 긴 시간동안 이뤄졌고, 대화는 그의 인생에서 단 한순간도 비켜나 있지 않았던 그의 고향 남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1941년, 바다가 지척인 설천 옥동마을에서 태어나 이곳 남해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그를 키웠던 바다를 지키는 해군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해군사관학교에 진학, 1964년 해군 항해소위로 임관해 1999년 해군참모총장을 끝으로 군(軍)과의 인연을 끝맺음 한 뒤에도 다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사)대한민국 해양연맹 총재로, 해양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한국해양대 교수로 일평생을 바다와 함께 해 온, 그래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향 남해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었다는 유삼남 전 장관과의 인터뷰 내용을 지난주에 이어 지면에 옮긴다.
<편집자주>
▲고향 방문을 환영하며 어려운 시간을 내어준 점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먼저 근황을 소개해 주신다면
= 이제 모든 관직과 공직에서 벗어나 가족과 가정, 그리고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남해미래신문에도 소개됐지만 요즘은 그림을 그리는데 전념하고 있다. 내 일생과 함께 해 온 바다를 주제로 이런 저런 부제들을 담아 그림을 그리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그림인데 꽤 재미가 쏠쏠하다.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탓에 그림 그릴 시간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그렇게 그린 작품 11점을 모아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최근 퇴역함정을 노량에 유치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 제안 배경이 궁금한데
= 우리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해양국가와 대륙국가의 문명이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 대륙국가는 해양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욕심이 늘 있었고, 해양국가는 반대로 전 세계의 70%인 해양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해 오면서 늘 해양과 대륙간의 충돌을 빚어왔다. 그 과정에서 잘 알 듯이 늘 역사는 해양국가의 승리로 이어져 왔다. 대영제국이 그랬고, 20세기 헤게모니를 장악해 온 미국은 해양을 기반으로 승리의 역사를 쟁취했고, 일본 등 많은 해양국가들이 바다를 기반으로 국력을 향상시켜 왔다.
이런 역사를 통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남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시 바다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의미있으리라 생각해 왔다. 대표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곳이고, 조선시대 유배객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남해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고, 다양한 특산물과 풍부한 어족자원으로 풍요로움을 누려온 곳이 남해다. 이순신과 유배객, 조선 건국설화를 안고 있는 남해, 팔만대장경 판각지인 화방사와 고현면 등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산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해 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던 차에 퇴역함정 유치를 통해 남해가 지켜온 과거의 역사문화자산과 결합돼 새로운 남해군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해군에 몸 담았던 이력이 고향 남해에 미력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교두보가 됐다.
▲퇴역함정이 유치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지
= 남해의 자산인 노량 충렬사와 거북선, 인근의 이순신순국공원, 고현면 일원의 팔만대장경 성역화 사업과 퇴역함정 유치가 연계된다면 이순신 장군의 순국지라는 어느 곳에서도 모방할 수 없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한때 이순신 장군과 연계된 다양한 지자체에서 이순신 장군을 콘텐츠로 한 지역축제부터 다양한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천편일률적인 기획과 활용으로 최근에는 많은 지자체가 이순신 장군 콘텐츠 활용에 소극적이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던 곳이나 승전 등등 유사할 수 밖에 없는 콘텐츠만 활용했기 때문이다. 우리 남해는 이순신 장군의 순국지라는 어느 곳에서도 모방하거나 가져갈 수 없는 탄탄한 역사적 근거가 있고, 임진왜란 23전23승이라는 전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 독보적인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현대 해군의 핵심전력이었던 1세대 퇴역 호위함이 유치되면 이들이 결합돼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고 이를 기반으로 관광객 유입효과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순신 순국지라는 차별성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남해군에서도 과거 노량해전 승첩제부터 현재 이순신순국제전까지 다양한 관련 축제를 개최해 왔는데, 호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 사관생도 시절부터 수 십년간 고향 남해를 찾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충렬사를 참배해 왔다. 해군에 복무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순신 장군을 동경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간 우리 남해군을 비롯해 타 지자체가 이순신 장군의 단편적인 측면에만 집중해 온 면이 크다. 이를테면 승전이랄지, 임진왜란 당시 주둔지랄지, 탄생지, 유해가 안치된 곳 등등 각자의 입장에서 다루기 쉬운 콘텐츠에만 집중해 왔다. 남해도 일견 마찬가지다. 특히 분단국가라는 안보적 위기가 상존하는 우리 나라에서 이순신 장군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무궁무진하다. 그런 측면에서 순국지라는 고유의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종합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통상 행정의 벤치마킹을 다른 지역의 좋은 사례를 모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역으로 우리 지역의 고유한 자산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기반해 타 지자체가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발굴해 내는 것이 진정한 벤치마킹이다. 과거 승첩제와 순국제전의 개최 취지를 살리되 변형되고 차별화된 방식으로 이순신 장군 콘텐츠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축제의 기본요소를 갖춰 노량과 이순신순국공원, 팔만대장경에 이르는 호국안보교육, 관광자원화의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 각계의 아이디어가 모이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각계의 아이디어를 말씀했다. 그런 차원에서 출향인사를 주축으로 고향 남해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싱크탱크로 보물섬남해포럼을 발족하고 초대 상임대표도 맡았는데, 최근 활동이 조금 침체된 듯한 느낌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이제 일선에서는 은퇴했지만 늘 고향 남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건 돕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노마지지(老馬之智 -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의 고사성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하찮을지언정 삶에서 얻은 교훈과 지혜는 누구에게나 있다. 포럼 출범 초창기 많은 원로인사들이 각계의 전문성과 역량을 기반으로 고향 남해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해 보자고 출범한 것이 보물섬 남해포럼이다. 물론 젊은 학자들이나 연구자들도 있었지만 여러 한계로 인해 이들의 역량을 담아내지 못한게 한계였다.
내부적으로는 객지에 거주중인 출향인사를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남해의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측면도 있고, 부족한 관심으로 학계의 일반론에 국한해 정책을 제안했던 것이 군민과 군정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또 군수의 성향에 따라 포럼에 대한 호의가 다소 등락을 띠었던 것도 사실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의가 될 수 있겠으나 포럼과 군정이 최초 포럼이 출범했을 당시의 취지를 되살려 포럼 구성원들에게는 남해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갖도록 유도하고 포럼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고 군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제안을 내놓음으로 해서 진정한 군정의 싱크탱크로 출향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활용되고 군정에 이같은 제언이 반영되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한다. 포럼에서도 최근의 침체를 극복하고 진정한 남해 발전의 싱크탱크가 되도록 하기 위해 젊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잦은 접촉이 포럼의 발전은 물론 포럼에서 제시되는 정책의 성숙도와 연결된다는 점을 인식해서 좀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남해군의 행재정적 지원, 공조가 이어졌으면 한다.
▲끝으로 지역의 원로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삶을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을 하고 살았다. 때로는 제가 거쳤던 공직과 관직이 "운(運)이 좋아서 그런 것이다"라는 평가들도 있었고 물론 그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도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거둔 일신의 성공은 '늘 2인자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자평한다.
최근 그림 그리는 것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정리하는 의미로 자서전을 쓰고 있는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2인자로 살아온 것이 좀 더 높은 자리로 가게 하는 힘이 됐더라. 그래서 많은 후배들에게 그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2인자라고, 남보다 좀 뒤쳐졌다고 절대 좌절하지 말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다. 2인자는 늘 앞서 가는 1인자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늘 희망을 갖게 된다. 희망은 변화를 추동하는 동력이다. 우리 삶도, 우리 지역도 마찬가지다. 또 늘 행운과 불행은 함께 한다. 성공이라는 행운 뒤에는 늘 생각지 못한 불행이 함께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채워지면 비울 줄 알아야 하고 비운 만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시 이순신 장군 얘기로 돌아와 말을 맺자면 이순신 장군은 생전에 늘 고초를 겪었고, 주변의 시샘과 질투로 백의종군하는 상황에서도 애민사상을 바탕으로 늘 깨어있고자 했던 인물로 결국 모든 국민에게 추앙받는 성웅이자 위인이 됐다.
늘 깨어있으면서 목표를 잊지 말고 희망을 동력 삼아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군민, 남해군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