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마을 김정기 씨의 촌살이◁ "남해에서 농사 지으며 건강하게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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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남마을 김정기 씨의 촌살이◁ "남해에서 농사 지으며 건강하게 살 겁니다"

서면 상남마을 김정기 씨, 지난해 귀농 시금치 수확 한창
조선업계 40년 경력, "조선산단 무산, 전화위복 될 수도"

정영식 jys23@nhmirae.com
2021년 01월 15일(금) 10:47
▲서면 상남마을에 사는 김정기 씨는 조선업계에서 40년간 근무했으며 지난해 은퇴와 함께 남해로 귀농, 시금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사진은 과거 동아마라톤 완주 당시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정기 씨
남해살이 7개월 차. 400평 남짓한 큰 텃밭에 돋아 난 시금치를 수확하느라 김정기 씨는 눈코 뜰 새가 없다. '지역신문 기자'라며 "인터뷰에 응해주십사" 부탁하는 전화가 왔는데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못 낼 정도다. 아직 농사일에 적응이 덜 되어 허리며 무릎이 아파오는데 다른 밭에서 시금치를 캐는 할머니들은 몇 시간째 쭈그려 앉아 그 자세 그대로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참 대단들 하시네.' 무릎과 허리가 질러대는 비명에 자리에서 일어서 고개를 든 김정기 씨. 그의 눈 안에 여수를 향해 물살을 가르는 화물선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내 손으로 저런 배들을 만들었었는데…….'

그의 머릿속에 조선업과 해양플랜트 업계에서 근무하며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40년이 펼쳐졌다.

'다음 주에 기자를 만나 조선소에서 근무했던 이야기도 들려주고 해야 되겠다.' '남해미래신문 김 아무개 기자'가 요청한 촌살이 인터뷰에 응하기로 마음먹으며 김정기 씨는 다시 초보 농부로 돌아갔다.



▲김정기 씨가 일구고 있는 400평 규모의 시금치 밭. 그는 서면 특산물 단호박 등 기타 농작물 재배로 농사의 영역을 확대할 생각이다.


▲조선·해양플랜트 40년, 남해서 시금치 농부

김정기(66) 씨는 남해에 호감이 갔다.

조선소와 해양플랜트 업계에서 수 십 년을 근무하며 대한민국 조선업 발전과정을 지켜 본 그였기에 남해에 조선소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리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남해에 방문해 서면 일대를 둘러 본 후 남해에 대한 그의 감정은 호기심을 넘어 호감으로 변했다. 이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면 조선소와 관계없이 은퇴한 이후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기 씨와 남해의 인연은 지난 2003년 이렇게 시작됐다.

"서면 상남마을 현 부지를 소개 받았을 때, 앞이 탁 트여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땅을 매입한 다음 귀촌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죠. 이장님을 만나고 마을회관에 가서 주민들에게 인사도 드리고요. 은퇴를 코앞에 둔 2017년에는 확보한 부지에 집을 짓고 본격적으로 귀촌을 준비했습니다."

남해와 직장이 있는 거제를 오가며 생활하던 정기 씨는 2020년 6월 은퇴와 함께 남해에 정착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김정기 씨는 남해에서 시금치 농사를 지으며 산다.

"지난해 연말에 수확한 시금치를 지인들에게 보내줬더니 '이렇게 달고 맛있는 시금치가 있었느냐?'라는 반응들이었어요. 여기저기서 시금치 주문이 들어와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였죠. 포장 박스가 없어서 군내 마트들을 다니며 빈 박스를 얻어오기도 하고 애를 좀 먹었어요. 아직 초보 농부이긴 하지만 남해 시금치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남해 시금치에 대한 주변의 호평에 고무된 정기 씨는 "앞으로 서면 명물인 단호박이나 기타 브랜드화 할 만한 작물들을 찾아 농사 규모를 확대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직 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할 것"

"아직 은퇴가 실감이 나지 않아요. 10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군청 홈페이지나 고용노동부 고용정보시스템을 들여다보는데 내 자리가 안 보여요. '나는 아직 쓸모가 있다'라는 생각에 은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체력도 아직 문제없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나를 활용할 방안을 찾아 볼 생각입니다."

지난 40년간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을 살아 온 김정기 씨. 그는 은퇴와 함께 찾아 온 생활리듬의 변화에 오히려 힘이 들었다. 아침에 굳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불안감이 되어 그를 사로잡았다. 그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찾은 해답은 악기연주와 자격증 취득, 그리고 마라톤이었다.

김정기 씨는 "남해에 집을 지으면서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남해에서도 배움을 이어가며 동호회 활동도 하고 싶은데 코로나19 때문에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네요.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동료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색소폰을 연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고용노동부 지원사업을 통해 2월 16일부터 중장비 자격증 공부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굴착기와 지게차 자격증 취득 과정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둔해지지 않도록 단련하고 중장비 관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와함께 "운동을 통해 꾸준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전에 동아마라톤에 출전해 2회 완주한 적이 있는데, 나이 70이 되면 고희연 대신 춘천마라톤에 참가해 볼 생각입니다. 남해에 마라톤 풀코스 100회 완주, 남해일주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한 이상만 씨라고 계시죠? 정말 대단한 분"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남해 조선산단 무산, 전화위복 될 수도"

조선소와 해양플랜트 업계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김정기 씨의 말을 들으며 끝으로 과거 삼성중공업이 참여했다가 끝내 백지화 된 남해조선산업단지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조선산단이 무산된 게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조선업이나 해양플랜트나 2007년부터 2012년경까지 정점을 찍었다가 지속적인 하향세에 있거든요. 조선업은 저유가, 해운업 불황 등의 문제로 기나긴 터널 속에 있고 해양플랜트 또한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의 영향으로 고사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특히 조선업은 우리나라 기술수준이면 상선 정도는 자동차 찍듯 찍어낼 수 있어요. 조선소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죠. 기대한 만큼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거예요. 사람이 많이 필요한 건 해양플랜트 산업인데 해양플랜트 산업의 활성화도 참 어려울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이어 "서면지역은 바다일몰 명소라는 지역의 환경을 특화시켜 볼거리와 특산품을 함께 판매하는 관광산업에 몰두한다면 산업단지를 유치하지 못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그가 애정을 갖고 둥지를 튼 남해에 조언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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