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출토된 고려청자·막새기와…, 남해 고려시대 굵직한 역사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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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3(금) 15:57
▷추석특집◁ 출토된 고려청자·막새기와…, 남해 고려시대 굵직한 역사 중심지

삼별초의 남해주둔지 대장군지 관련 (재)삼한문화재연구원의 해설

/정리 홍성진 선임기자
2024년 09월 13일(금) 10:26
▲남해 대장군지 서면 서호리 산 일대에서 출토된 고려청자 및 자기류 파편.
본지는 지난 357호에서 남해군이 (재)삼한문화재연구원에 발굴조사를 의뢰한 서면 서호리 산 일대가 대몽항쟁기 삼별초 '유존혁' 장군 대몽항쟁터일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추가 사항과 전문가 연구원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자 현장을 조사했던 (재)삼한문화재연구원 소속 조사담당 연구원(과장)과 최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남해는 고려시대 굵직 굵직한 역사의 중심지이자 당시 고려인, 남해인의 호국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관련 내용이다.
<편집자 주>


고려시대 유존혁 대장군 관련 전설로만 이어져 왔던 남해 대장군지(발굴 조사 현장)는 지형상 당시 사람이 살지 않았던 은밀하고 폐쇄적인 곳이지만 바다와 연결될 수 있는 지역이다.

남해에 유존혁 장군의 삼별초가 있었다는 사실은 일단 정식 역사 기록에 남아 있었지만 그 주둔지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지금껏 실제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다.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받아 조사한 결과 발굴지역은 지형상 고려시대 당시에도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다. 그럼에도 은폐된 이곳에 길이 2미터가 넘는 암석으로 벽석을 지었고 그 벽석을 쌓는 방법 또한 진도 용장성과 동일한 고려시대 기법이다. 당시 가옥이나 절을 짓는 방법과는 확연히 다른 기법이다.

여기에다 고려시대 상류 귀족들이 사용했던 고려청자(고려자기)가 출토되었고 13세기 전후에 나온 전형적인 고려시대 막새기와는 이곳이 일반적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준다. 출토된 막새기와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기와는 아니다.

13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청자, 막새기와, 전돌 등등의 유물과 성을 쌓는 고려의 축조방법, 배치방법 등등은 은폐된 이곳이 고려시대 규모가 크고 중요한 건축물이 5단의 대지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이곳이 대장군지가 유력하다는 내용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다.


▲ 대장군지 국가유산청에 보고 후 오는 12월 학술대회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받가 시굴조사한 자료를 종합한 보고서(이곳이 대장군지)를 국가유산청에 올리면 이 건과 관련된 학술대회를 올해 12월에 개최하게 된다. 이곳의 성격과 구조, 의의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 후 각계 각층의 전문가와 연구자들의 종합적인 의견을 들어 이곳의 성격을 규정지을 계획이다.
차후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다시 받아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하면 더 정확한 성격이나 구조를 알수 있다. 대장군지의 범위, 시기, 구조와 성격 등을 조사했고 현재까지 모든 연구원과 전문가들은 이곳이 대장군지라는데 대해 이견이 없었다.

▲남해 대장군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막새기와


▲ 유적지조사가 심화되면 남해는 호국의 성지로 확인될 것
고려시대 대몽항쟁 유적지는 남해 대장군지를 포함하면 공식적으로 강화도, 진도, 제주도 등 4곳이다. 4곳의 유적지 모두 흔치 않은 역사의 흔적이다. 남해는 팔만대장경 판각지라는 학설 또한 유력한 데다 대장군지까지 확인되고 있기에 호국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노량해전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장군지에 대한 정밀조사 뿐 아니라 팔만대장경 판각지에 대한 조사까지 심도 있게 진행되어 물증이 확인된다면 고려시대 남해가 대몽항쟁의 중심지였고 호국의 성지임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 전설로만 전해왔던 이곳 대장군지는 현재까지 모든 증거를 살펴보면 흔치 않은 대몽항쟁의 유적이자 호국정신이 깃든 성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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