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권나경 씨의 촌(村)살이- "남해온게 '로또' 당첨된 것처럼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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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0(금) 10:12
김누리·권나경 씨의 촌(村)살이- "남해온게 '로또' 당첨된 것처럼 행복해"

'남해최초·경남에서 단 1대' 귀농청년 농업인 트랙터 지원사업 선정
다친 할머니 구한 '여름이', 6마리의 반려동물과 슬기로운 귀촌생활

2023년 12월 26일(화) 12:11
▲키우는 반려묘를 안고 있는 김누리 씨(좌)와 권나경 씨(우)
유난히 추워진 탓인지 남해에는 진눈깨비가 종일 흩날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채,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은 겨울 공기 속 연신 하얀 입김을 뿜어내는 모습이다.

이렇듯 살을 에는 추위가 몰아치는 시기에도 남해는 바쁜 농번기를 보내고 있는데, '보물초'라 불리며 남해의 특산물로 유명한 시금치의 수확 시기이기 때문이다.

남해에서는 심심치 않게 시금치가 자라는 밭을 볼 수 있는데, 이날 다녀온 초양마을도 시금치를 키우는 농가가 꽤 많아보였다.

이곳 초양마을은 포동포동 살찐 주먹만 한 참새들이 차츰 따스해지는 햇빛 사이로 종종걸음을 치며 짹짹 지저귀는 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마을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조그마한 양옥 주택들과 시금치를 키우는 초록빛 들녘, 그리고 겨울의 색깔을 그대로 담은 것처럼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바다가 그어진 선 하나로 맞닿아 있는 곳.
▲남해 최초·올해 경남에서 단 1대가 선정된 트랙터 지원 사업에 김누리 씨가 선정됐다.

커다란 캔버스에 초록색과 푸른색의 물감을 덧칠하면 물을 머금은 물감의 색깔들이 하얀 캔버스를 물들이며 퍼져나가는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집들, 시금치 밭, 해안도로, 바다가 가진 각각의 색깔들이 조화롭게 자리 잡아 초양마을의 풍경화 한 폭을 이루고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고 얼마쯤 갔을까, 이날 방문하게 될 집의 대문에 당도하니 '컹'하는 소리와 함께 필자의 몸집만한 커다랗고 토실토실한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묵직한 앞발을 들고 성심껏 꼬리를 흔드는 애교를 부리면서 환영의 인사로 격한 포옹까지 해주는 모습에 정신을 못 차릴 찰나, "여름아!" 한참 신이 난 개를 진정시키는 목소리가 들렸고

이날 얘기를 나누게 될 주인공 김누리·권나경 씨 부부를 그렇게 마주할 수 있었다.


▲마을할머니를 구했던 영리한 개 '여름이'

■"할머니를 구한 이후 예쁨 받는 여름이, 우리는 시금치 농사로 바쁜 일상 보내고 있어"

김누리·권나경 부부와는 지난번 우리 신문에서 '여름이'에 대한 기사를 다룬 적이 있어 알게 됐고, 그 인연으로 이날 인터뷰까지 이어지게 됐다.

꽁꽁 언 바깥 공기를 뒤로 하고 현관에 들어서자 아담하고 따스한 부부의 집안에서는 싱그럽고 산뜻한 유자의 향기가 나 코끝을 간지럽혔고, 털이 복슬복슬한 고양이들이 나른한 기지개를 켜며 낯선 이의 방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느릿느릿 마루를 돌아다녔다.

이어 물이 끓는 소리, 고양이들의 하품소리, 권나경 씨가 유자껍질을 써는 소리가 들리는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 안에서 차갑게 언 손발과 함께 긴장감이 풀렸고, 간단한 안부 인사부터

시작해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김누리 씨는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전하면서 여름이가 다쳐서 쓰러진 할머니를 구해 화제가 된 이후 근황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누리 씨는 "지금은 시금치 수확으로 바쁘지만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며, "그 일이 있기 이전에는 다른 개들에 비해 덩치도 많이 크고 눈동자색깔도 갈색이라 무서워하시는 주민분들도 꽤 많이 계셨다. 모든 사람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보니… 하지만 여름이가 다친 할머니를 구한 일이 있고난 후에는 어르신들께서 여름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바라봐주신다"며 바빠진 일상 속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들에 대해 기쁨을 전했다.


▲여름이 밥을 뺏어 먹다가 가족이 된 '겨울이'

■"'남해 최초·올해 경남에서 단 1대', 트랙터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 너무 기뻤다"

김누리 씨와 권나경 씨에게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4회 귀농 청년 농업인 트랙터 지원 사업'에 선정돼 트랙터를 수여받게 된 것이다.

귀농·귀촌을 택한 젊은이들을 지원해주는 이러한 지원 사업들에 대한 정보와 알게 된 경로 등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듯 여러 방면에서 귀농·귀촌인들을 지원해주는 공모 사업들이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홍보된다면 젊은이들의 귀농·귀촌에 대한 진입 장벽의 허들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김누리 씨와 권나경 씨는 "작년에 군청에서 이러한 지원 사업이 있다고 알려주며 권유하셨고, 인스타에 공고가 떠서 신청하게 됐다"며,"서류 및 화상면접까지 1차부터 3차까지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쳤다. 나중에 안 거였지만 경쟁률이 171대1, 169대1 정도로 치열하다는 것을 알았고 많은 기대를 하진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다 마침내 발표가 났는데 남해에서는 최초, 무려 경남 전체에서도 단 1대가 선정이 됐다고. 근데 그게 우리가 선정이 됐더라. 처음에 결과 발표를 듣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놀랐지만 이내 소리 지를 정도로 너무 기뻤다"며 그 당시를 다시금 회상하며 기쁨의 소감을 전했다.

또한 농업기술센터 농기계팀의 정현정 팀장님께서 트랙터 작업기를 비롯한 부속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귀농·귀촌하기 위해 전국일주, 남해의 들과 바다에 이끌리듯 매료돼 왔다"

도시의 삶을 내려놓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짓고 사는 것에는 많은 고뇌와 결단력이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젊은이들이 웬만큼 갖춰져 있는 도시의 인프라 및 시스템의 편의성을 누리며 안주하는 대신, 별다른 연고 없이 시골 깡촌의 정서와 고된 농사에 적응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들만의 얘기와 과정들이 더욱 듣고 싶어졌다.

권나경 씨는 "남해로 와서 살게 된지 1년 2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원래 우리 부부는 창원 진해에서 살았고, 귀농·귀촌을 결심하게 된 계기라 하면… 2020년에 가족들의 건강 때문이 아닐까.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저를 포함한 가족들이 암 판정을 받는 등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며, "그전부터 우리 부부는 언젠가 경치가 좋은 터에 집을 짓고 마당에서 강아지도 키우는 로망같은게 있었다.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고 나서 공기 좋고 전망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차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듯이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녀봤는데, 남해 초양마을의 풍경이 제일 맘에 들었다. 저는 들녘의 전경을, 남편은 바다가 보이는 전경을 좋아하는데 초양마을은 들과 바다를 함께 담고 있어 여기에 살자고 결심하게 된 것 같다. 이후 남해로의 촌살이를 위해 3년간 준비해 초양마을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초양마을에 정들어 오랫동안 정착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주거 문제에서 고민 깊어져…"

귀농·귀촌을 선택한 젊은이들이 시골에 내려와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들이 바라보는 남해는 깨끗한 환경에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곳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막상 가장 중요한 정착 및 주거 문제에서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한다.

김누리 씨와 권나경 씨는 입을 모아 "역시 아무래도 주거 관련 문제가 제일 불편하고 어렵지 않나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남해로 귀촌하는 다른 분들도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라며, "국가에서 운영하는 귀농인을 위한 주택이 있고 귀농인들이 신청하면 1년 정도 거주가 가능한데, 귀농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다.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집에서 전에 살았던 분들도 초양마을에 계속 머물고 싶어 했지만 기간이 끝나고 결국 이곳에 남지 못하셨다. 귀농·귀촌 생활에 적응해 적성이 맞아도 당장 집을 구할 수가 없고 1년의 거주 기간이 끝나면 다른 집을 구해야 한다. 남해에 와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에 비해서 받쳐주는 시스템이나 지원은 다소 미약해 다시 도시로 돌아가거나 귀촌을 포기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귀농·귀촌인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지원 및 복지 기반 마련됐으면"

현재 지역 인구 소멸 위기에 있는 남해군은 다른 도시에서의 인구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행정적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귀촌으로 유입돼 정착하려는 젋은이들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맹점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해보았다. 이들 부부는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면 거주 기간 1년을 채운 후 기간 연장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좋고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임대 주택과 같이 주거 환경 기반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타 시·군에는 귀농정착지원금 제도가 잘 마련되어있는데, 남해에서도 이것을 도입해 귀농·귀촌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처럼 2마리의 강아지, 4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소박한 농촌 일상을 영위하는 김누리·권나경 씨 부부는 초양마을에 정착하게 되면 땅을 사서 집을 짓고, 터를 잡으면 체험농장까지 폭넓게 운영되는 애플수박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한다. 권나경 씨는 끼니를 챙기기 힘드신 어르신들께 영양이 가득한 식사를 적은 돈으로도 푸짐하게 드실 수 있는 작은 식당을 차리는 것도 하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누리 씨는 초양마을의 젊은 사람들과 농사도 함께 짓고, 농가 봉사도 다닐 수 있는 협동 조합같은 모임을 만들어 정착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고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초양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하는 것을 끝으로 질의응답을 마무리했다.

이후에도 이들 부부가 6마리의 반려동물들과 초양마을에서의 '슬기로운 귀촌생활'을 앞으로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대문을 나섰다.

청명하고 맑은 바닷바람과 겨울 하늘, 시금치를 키우는 초록빛 들녘이 펼쳐지는 전경, 초양마을이 가진 싱그러운 색깔을 뒤로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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