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앵강만(鶯江灣)이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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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앵강만(鶯江灣)이라 부를까?
2018년 08월 20일(월) 18:13
정의연 본지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일제강점기 때 민족혼 말살정책과 일본 침략을 은폐시키려는 의도적인 행위로 앵강곡(鶯江谷)과 앵강만(鶯江灣)이라는 지명을 일본인들이 만들었다. 앵강만은 바다이면서 호수처럼 보이지만 해산물의 보고이자 군사적요충지이며, 전통민속문화가 살이 숨 쉬는 곳이다.

남해읍에서 이동면 우회도로를 지나 미조를 향해 500여m쯤 가면 경사도로에 세 갈레 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을 앵강곡이라 부른다. 우측으로 가면 이동면 신전과 화계마을이 나타나고 계속가면 남면이다. 다시 세 갈래 길에서 좌측으로 가면 이동면 금천과 원천마을이 나타나고 앵강만의 해안을 따라 계속가면 상주해수욕장과 미조면이 나타난다. 남해동산에서 내려다보면 호수와 같은 앵강만이 펼쳐지는데 마치 나비가 날개를 펴고 나르는 형상 같기도 하고 항아리를 눕혀 놓은 것 같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앵강만의 입구 병목지점에 위치한 노도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서 앵강만의 구슬픈 파도소리가 앵무새의 노랫가락 같다고 하여 앵강(鸚康)이라 하지만 해설과 명칭이 억지로 갖다 붙인 것 같이 어색하다. 원천마을 주민들은 '비 내리는 밤에 꾀꼬리 울음소리가 나고 꾀꼬리 눈물 같은 빗물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로 흘러내려 꾀꼬리의 눈물바다!'라고 부른다.

앵강만은 왜구들의 침입이 잦은 곳이기에 성현성, 곡포보성, 고진성이 있고 통신시설로 성현 봉수대, 설흘산 봉수대 등의 군사시설이 존재한다. 앵강만 깊숙한 곳 화계에 곡포보성(曲浦堡城)과 굴강(掘江)이 있어 어선, 전선 등을 은폐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배선대 민속행사가 조상으로부터 전승되었는데 이는 앵강만 용왕을 배선장군이라 칭하고 제로 모시면서 주민들은 단합하고 앵강만을 어선들이 순항하면서 풍어제를 모셨던 곳이다.

일본인들은 앵강곡을 왜구 침입의 방어선이라 하며, 주민들의 삶의 전통이 살아 있는 중요한 생활의 터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조선시대에 일본인들이 남해안을 노략질하기 위한 침입하는 해로였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노략질과 침입 등의 부끄러운 과거 역사 흔적을 없애고 한민족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으로 명칭을 바꾼 것이 앵강곡과 만이다. 주위의 지형을 살펴보면, 앵강만으로 흘러 들어오는 큰 물줄기가 있는 봇골은 금산 어귀에 있는 크고 깊은 골로서 금산의 정기가 상통하며, 옛날에는 산삼도 났다고 하는데 금산 정상에서 발원하여 골짜기를 따라 앵강만으로 흘러내리는 골고랑은 앵강곡 밑에 있는 골짜기이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봇골과 골고랑 두 군데의 지명을 보면, '복골'은 '곳골'과 발음이 비슷하고 '골고랑'은 '곳구릉'과 비슷하다. 여기에서 곳골은 꾀꼬리의 우리나라 옛말이고, 곳구릉은 꾀꼬리가 우는 소리를 뜻한다. 이러한 영산 금산의 정기가 골짜기를 따라 앵강만으로 들어오는 곳골을 일본인들은 교묘하게 곳골과 연관시켜 꾀꼬리의 순 우리말인 곳골을 한자로 앵(鶯)이라 쓰고, 호수와 같이 잔잔한 강(江)이라 하여 '앵강만'이라는 지명을 붙였다. 꾀꼬리를 국립국어원에서는 곳고리에서 굇고리->꾀꼬리로 음운변이된 것이라 설명한다. 이 새는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에 찾기가 몹시 어려워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말이 생겼다. 금산 곳골은 무성한 숲이 형성되어 있는데 많은 신비가 숨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앵강곡에 대하여 문의하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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