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진 선임기자
2025년 01월 10일(금) 09:52
|
#2 남해국수 맛의 비결
우리밀 남해국수(집)의 국수 맛에는 40여년 '국수'에 대한 모든 노하우가 숨어있어 관광객에게 정평이 나 있다.
우선 우리밀 남해국수의 주재료인 밀은 시중에서 파는 수입밀이 아니라 토착 전통 작목인 '키작은 우리밀'만을 우리밀영농조합에서 엄선해 직접 생산한 것이기에 어느 식당의 원료와는 차이가 있다. 키 작은 우리밀에는 면역세기능 증진, 다량의 식이섬유 소화증진 등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 신선한 원재에다 40여년의 국수에 대한 노하우가 가미된 국수 한그릇은 먹어본 분이라면 감칠맛나는 그 맛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다 지인들의 식당 개업을 권유받을 만큼 인정받은 안주인의 음식 솜씨는 남해국수를 새로운 브랜드로 탄생시켰다.
남해를 찾는 분들이라면 '남해국수'를 검색해 올 정도로 이제는 남해관광을 상징하는 또하나의 보편적인 검색어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오동마을 남해국수(집)은 '남해국수'를 최초로 시중에 알리며 일반명사로까지 통용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유독 공휴일에 외지 손님이 많은 이유이기도 한다. 오동마을 남해국수에 들어가는 모든 식자재는 보물섬 남해산이 주축이며 모두 국내산 재료다.
#3 오동마을 남해국수(집)의 두 연예인
오동마을에서 부모를 도와 국수를 뽑던 자녀들이 이제는 방송활동을 하는 연예인이 됐다.
1남 3녀를 중 셋째 하지예씨는 경기대학교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막내 하동근씨는 트로트 가수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연예인의 집이라 일부러 찾는 손님들도 늘었지만 하희택 사장에게는 국수를 뽑는 일까지 도와주던 여전히 어린 자녀일 뿐이다.
하 사장은 "자녀 모두 남해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는데 공장이 어려웠을 때는 두 팔을 거둬 붙이고 국수를 뽑던 모습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부모를 도와 국수를 뽑던 아이들이기에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고 말한다.
학원에 가기보다 국수공장과 가게를 도왔던 자녀들의 사진들이 남해국수 한켠 벽면을 가득 채운 이유는 국수와 함께 한 국수 인생 40여년의 역사 속에 녹아있는 자녀와 추억을 기억하고 싶어서인 듯하다.
#4 남해국수(집) 50년된
국수기계와 커피숍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피란민들의 배를 채워 주었던 국수, 그 역사 속에 구포국수는 한 축이었다. 밀을 빻아 국수를 뽑던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기계들을 현재 남해국수(집)에 가면 감상할 수 있다.
이제는 강화된 햇삽(haccp)으로 더 이상 40여년의 손때가 묻은 정든 기계들이 가동되지는 않지만 이 기계들은 여전히 한켠에서 구포국수와 남해 우리밀국수의 역사를 지키고 서 있다.
하 사장은 "강화된 햇삽 기준에 맞게 수 억원을 재투자할 여력이 없어 아쉽지만 이제는 거래처 납품용 국수를 생산하지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50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기계에는 국수로 허기를 채웠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숨어있고 작게는 저와 가족의 삶이 담겨있어 새로운 용도로 전환할 계획이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계획은 일반인들에게 국수의 역사와 기계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색 커피샵을 조만간 오픈하는 것.
'키 작은 전통 우리밀'로 만든 남해국수를 먹고 국수의 역사와 기계를 살펴보며 커피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이 하루 빨리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5 오동마을 남해국수(집)의
볼거리 500년 보호수
남해국수(집) 옆에는 수령 500년 이상인 느티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
오동마을 보호수(12-05-13)는 대략 540년 전 하씨 집성촌으로 마을이 형성될 시기에 심겨진 느티나무로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주민들의 쉼터로 역할을 하고 있는 풍치목이다.
어린 시절 이 나무에서 놀았던 하희택 사장은 "신작로가 없었던 그 시절, 이 나무에 올라가 잠도 자고 친구들과 가지타기 놀이도 했었다"며 "이 나무와의 추억이 없는 마을주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지금은 마을 공동체를 묶는 구심점이자 관광객들이 사진을 남기는 인증샷 장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옛날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마을으로 명명된 이 마을에는 봉황이 살았다고 한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틀고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는 전설 속의 신비의 새다.
남해국수(집)에 가면 오동마을에 전해오는 봉황의 전설도 듣고 5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추억의 인증샷을 남겨보자.